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먹는 이색 음식 수구레국밥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여주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처음 보는 음식간판이 눈에 띠었다. 수구레국밥집이었다. 들어본 적은 있으나 먹어본 적은 없는 수구레국밥은 어떤 맛일까 궁금증이 가득해졌다. 꼭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기에 며칠 후 딸과 아내를 데리고 다시 여주로 향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고기사이에 붙어있는 아교질 부위로 젤라틴과 콜라겐 성분이 풍부해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소의 특수부위이다. 내가 간 식당에는 수구레국밥, 수구레볶음, 수구레전골 3가지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수구레 무침과 수구레국수, 수구레튀김 등 다양한 방식의 요리가 있다.
수구레는 경남의 대표적인 식재료였다. 경남 밀양과 창녕에는 농사일이 마무리되는 음력7월 15일경 머슴들이 하루 날을 잡아 먹고 노는 잔치인 백중놀이라는 것이 있다. 머슴들이 값비싼 소고기를 먹기는 어려웠기에 소가죽을 벗겨내서 거기에 붙어있는 수구레로 탕을 끓여 여럿이 나눠 먹었는데 이것이 수구레국밥의 시초이다.
수구레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살코기 대신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아닌 소고기였다. 그러나 그 수구레가 콜라겐과 젤라틴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살이 찌지 않는 웰빙음식으로 알려져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피부미용과 관절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지방이 거의 없으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이다.
수구레가 가장 유명한 곳은 경상남도 창녕이다. 창녕에 열리는 우시장은 전국 5대 우시장 중에 하나이다. 구한말 보부상들의 주요활동 지역이었던 창녕에 경상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이 열렸는데 우시장 인근에 있는 창녕장의 명물중 하나가 수구레국밥이다. 그 시절 우시장 옆 장터에서 값싼 수구레와 선지를 듬뿍 넣은 수구레 국밥은 흔한 메뉴였다. 지금도 창녕장의 대표음식은 수구레국밥이다. 창녕 뿐 아니라 대구 현풍도 수구레국밥이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수구레를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수구레 해장국은 100% 국내산 한우로 소의 부산물을 사용한다. 수구레나 선지는 수입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 한 마리를 도축하면 수구레가 2-3kg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재는 구하기도 쉽지 않고 물량도 부족해서 귀한 대접을 받는 소의 특수부위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별미중의 별미가 되었다. 먹어보니 탄력 있는 식감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쫄깃하고 야들야들하면서도 부드럽고 끝맛은 고소하다. 곱창이나 내장 좋아하는 이들이 아주 좋아할 음식이다. 수구레와 선지, 콩나물, 배추 등이 들어가서 시원하고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 맛도 일품이다.
수구레는 손질이 까다롭고 오래 걸려서 결코 쉬운 음식은 아니다. 먼저 끓는 물에 수구레를 30분정도 삶아내어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후 삶은 수구레를 물에 넣고 빨래하듯 치대서 씻는 과정을 통해 잔털과 거친 겉껍질과 기름기를 제거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콩나물과 무를 끓인 육수에 수구레를 넣고 향긋한 파 넉넉히 넣어주고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을 해서 센 불에 푹 익혀준 후 칼칼한 고추 썰어 올려주고 간 마늘 한 숟가락 올려주면 진하고 얼큰한 수구레 국밥이 완성된다. 먹어보니 수구레국밥은 선지국밥에 수구레를 넣은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를 가장 다양하게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미드(1901-1978)는 전 세계에서 먹는 소 부위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에 의하면 동아프리카의 보디족은 51개 부위를 먹고, 프랑스와 영국 사람들은 31개 부위를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20개 부위를 먹는다. 그만큼 부위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연구가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부위가 있으려면 누군가 다양한 부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고기 발골사들의 기술이 세계 1위이다. 한민족이 부위별 미각도 섬세한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수구레국밥이 뭔지 알면 100% 아재라는 소리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지 못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2살 딸아이는 완전 자기 취향의 음식이라며 좋아했다. 맛있게 먹었던 수구레국밥집의 여사장님께 수구레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주방에서 수구레를 가져다가 보여주시면서 설명을 해 주셨다. 자신은 마장동 도축장에서 수구레를 공급받는다고 하셨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진하고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 맛에 쫄깃한 수구레와 선지의 조화로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방문할 때는 수구레볶음을 먹어봐야겠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