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예년에는 여러 가지 행사로 인해 오월이 되면 온 교회에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는데 올해는 쓸쓸함마저 감도는 듯합니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가족 공동체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교회 내에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속적인 성공과 성장에 집착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각종 편법적인 세습과 목회 자리 매매 등으로 거룩한 교회가 사유화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순수한 신앙을 갈망하는 성도들은 ‘도대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합니다. 분노하는 이들도 있고, 소수의 특권을 여전히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젊은 층을 위시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조용히 교회를 떠납니다.
한국교회가 쇠퇴일로라 하지만, 작은 교회는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큰 교회는 워낙 필요 이상으로 컸었기에 교회는 여전히 커 보이기만 합니다. 큰 교회 목사들의 삶은 더욱 화려해 지고 그들의 아들들은 그 목회 자리와 그 화려함을 대물림 받으며 살고 있는데 성도들의 삶과 행복지수는 나날이 초라해지고 있으며 신앙은 더 이상 대물림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그랬듯이 교회는 늘 분주합니다. 코로나도 그 분주함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분주함은 내용이 아닌 그 자체로 성도들의 마음에 ‘도대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 틈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는 분명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성취의 능력’만을 추구해왔지만 기독교 신앙에는 분명 ‘존재의 능력 ’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정을 세우고 유지하고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우리 기독교 신앙이 지니고 있는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취에 민감하고 존재에 둔감하듯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가정을 지탱하게 하는 그 존재의 능력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목회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제가 영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은 거의 모두가 그 가정이 화목합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부모와 자식들 간에 스스럼없는 모습입니다. 사랑과 신뢰와 존중이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봐도 부부와 자녀들과 손자 손녀 및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나오는 가정이 더욱 행복합니다. 그 가족 구성원 개인의 모습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적입니다. 왜곡되어진 구석이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가정을 만듭니다. 올바른 가정은 올바른 사람을 만듭니다. 올바른 사람들이 모여 올바른 교회를 이루고 더 나아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갑니다.
오늘날 가정의 해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미혼, 만혼, 비혼, 이혼, 심지어 졸혼이라는 새로운 유행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세상을 선도하며 시대별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변해왔습니다. 미래 한국교회의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고,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사역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은 영국의 헨리 비숍 경이 작곡한 곡조에 미국의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와는 다르게 이 곡의 작곡자와 작사자는 '즐거운 나의 집'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비숍의 스물세 살 어린 부인 안나 비숍은 당대의 유명한 소프라노였는데 남편과 세 아이를 남겨 두고 반주자와 함께 호주로 떠나버렸으며 존 하워드 페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존 하워드 페인은 이 노래의 가사 1절 처음 부분처럼 작가로서 고상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고(‘Mid pleasures and palaces’) 2절 처음 부분처럼 대부분의 일생을 망명자와 같이(‘An exile from home’)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살다가 미국 영사로 근무하던 튀니스에서 1852년에 사망했습니다. '홈, 스위트 홈'을 그리워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이 노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1883년 그의 유골이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제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 그를 환영했고 합창으로 편곡된 이 노래를 모두 함께 불렀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우리말 가사는 영어가사가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된 노래들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그대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조안 서덜랜드가 자주 불렀습니다. 1962년 데카 레이블 음반에 실린 그녀의 노래를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음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의 목소리로 이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은 그 언제나 감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즐거운 나의 집'을 그리워했던 비숍과 페인, 이 두 남자의 마음을 떠올리며 두 남성의 연주로 들어 보면 어떨까요? 영국의 명 테너 로버트 티어의 목소리와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의 피아노 연주가 함께한 1976년 음반을 추천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노래의 선율과 우리말 가사만이 익숙하지만 아름답고 소담스런 피아노 반주와 특히 2절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트레몰로로 표현한 부분, 그리고 이 곡의 제목이자 영어 가사의 후렴인 ‘Home! home! sweet, sweet home’부분을 유념해서 들어보시면 이 노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정이 하나님 사랑 안에서 언제나 ‘Sweet home’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A1lVSvv_pno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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