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농부의 거듭나기
4월 중순을 넘어 하순으로 넘어가는 지금, 어느덧 농사도 노지에 모종을 심을 때가 왔다. 어떤 집은 벌써 먹을만한 모종을 심은 곳도 있지만, 4월의 종잡을 수 없는 날씨를 무난하게 넘기려면 가급적 5월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모종을 심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서 나도 뒤안 텃밭을 한달 전부터 만지작거리며 모종 심을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두어 평 정도 되는 뒤안의 작은 뜨락은 혼자 사는 나에게는 적정한 조건의 텃밭이다. 이주 전 하우스를 정리하다 겨우내 움츠렸다 몸을 일으킨 파 몇 개를 발견했다. 그것을 캐어 뒤안에 두줄로 심었다. 제법 태가 났다. 파를 심으면서 호미로 다시 한번 흙을 고루 파헤쳐 돌과 풀들을 제거했다. 돌들은 차곡차곡 밭 가장자리에 쌓아 물빠짐 역할을 하는 둔턱을 만들었고, 풀은 나의 발길이 닿는 곳에 뿌려놓았다. 손길이 한번씩 닿을 때마다 말끔히 정리가 되는 밭의 모습에 괜히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쌈으로 먹기 좋은 상추 두서너 종류와 깻잎, 멸치볶음에 요긴한 꽈리고추, 맵고 알싸한 맛을 풍기는 청양고추, 다양하게 쓰이는 토마토. 이번에 나의 텃밭을 장식할 모종들이다. 기타 다른 채소들 특히 오이와 호박은 거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를 면치 못하여서 내가 잘 못하는 제철 채소들은 로컬푸드 매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상추, 깻잎, 고추, 토마토 만으로도 여름 한 철 밥상을 풍성하고 맛있게 해줄 수 있으므로 올해는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밭들엔 5월 어린이날 즈음에 참깨를 심을 것이고, 6월 중하순에는 들깨와 콩을 심을 것이다.
며칠 전 소속교회 목사님이 농업기술센터에서 트랙터를 빌려왔다. 목사님의 밭을 갈면서 내가 경작할 밭도 두둑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여 600평 정도 되는 밭 전체를 빼곡히 두둑을 만들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두둑에 비닐을 씌우는 것이다. 두둑은 첫날부터 입이 벌어질 정도로 까마득한 길이였다. 그러나 지금 해놓지 않으면 흙의 수분이 날라가 나중에는 비닐을 씌우기도 어렵고, 모종을 심기도 어려울 정도로 단단해지기 때문에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두둑을 씌울 비닐, 흙을 덮을 삽과 호미, 비닐을 끝을 자를 칼을 준비하였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바람에 날리는 비닐을 단단히 붙잡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끌고가 씌우고 덮고 마무리를 했다. 두줄 정도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뭐, 세줄도 괜찮았다. 그런데 네 번째 줄을 할때가 되자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마침 윗집의 사모님이 지나가시다가 나의 힘겨운 작업을 도와주셨다. 덕분에 하루 네 개씩 덮기로 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첫날은 잘 지켰다. 그렇게 온 몸을 던져 고랑 네 개를 덮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내일도 네 개, 모레도 네 개 이런식으로 하여 이번주 내에 모두 덮기로 다짐을 했는데, 그 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몸이 침대에 던져진 순간, 과연 나의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까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 그렇다. 그 다음날 바로 나의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실천을 충실히(?) 지켰다.
그래도 요즘 작년보다는 조금 더 부지런을 떤다. 시간을 내어 하우스를 정리하고, 집과 밭을 오고가면서 올라오는 풀들을 제거하고, 밭의 돌들을 골라내어 그 돌들로 무너진 담을 쌓는다. 이태 동안 손을 놔버린 밭에 조금씩 마음을 들이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손을 보태다보면 어느 날에는 분명 양아치 농부로부터 벗어날 날이 오겠지. <끝>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