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쓰레기
플래너리 오코너는 미국 남부의 고딕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다. ‘고딕문학’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작품에 배어 있는 그로테스크하고 도발적이며 냉소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한 마디로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던 그녀는 문학사에 단 두 편의 장편과 30여 편의 단편만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 이래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 분위기로는 쉬이 짐작하기 어렵고, 모르고 보면 오히려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플래너리 오코너는 실상은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7시에는 성당으로 가서 아침예배를 드렸던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녀의 첫 장편 <현명한 피>가 우리나라의 한 유명 기독교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작품이 담고 있는 종교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이 속으로는 심오한 신과 구원의 질문을 던지고 있음에도 겉보기엔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신앙을 작품에 녹여 넣는 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녀는 무리하고 얄팍한 선교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용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녀는 전도용 책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를 인간보편의 문제로 표현한 셈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은 아마도 그녀의 다음 말일 것이다. “자신의 눈을 감고 교회의 눈을 가지고 보려고 하면 경건한 쓰레기가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태도가 신앙인으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이 그의 작품 안에 깊이 배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작품이 일견 종교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을 가진 것처럼도 보이는 것 역시 그녀가 비판한 ‘교회의 눈’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녀는 신 앞에 늘 흔들리며 늘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 아니라, 기구화되고 고착화되어 정해놓은 답 이외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정죄해버리는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리라.
플래너리 오코너의 이런 태도와 비슷하게 독일의 반나치 신학자요 목사인 본회퍼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 그는 종교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본회퍼 목사가 말년에 천착했던 주제는 ‘종교 없는 기독교’(Religionsloses Christentum)였다. ‘무종교적 기독교’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이 말 속에 담긴 ‘종교’라는 단어는 어쩌면 플래너리 오코너가 말했던 ‘경건한 쓰레기’와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교회라는 이름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경건의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명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잊으며 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이른다는 사실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 14:6)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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