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인간
토요일 오후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다녀왔다. 그곳 지하 1층으로 연결된 신세계 센트로 안에 있는 반디앤루니스라는 서점이 목적지였다. 휴일에다, 무더위를 피해서 일까? 인파라고 할 만큼 사람이 참 많았다. 쇼핑 매장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 길 잃기 십상이었다. 마치 모든 인간은 쇼핑하는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형서점 안에도 사람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웬만한 공간에는 사람마다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실례한다는 말없이 통로를 뚫고 지나가기 주저할 만큼 모두들 독서에 몰두하였다. 독서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 대형서점 일부에서나 볼 수 있는 의외의 진풍경일 것이다.
일부러 복잡한 서점을 찾은 이유는 여기에서 책 출판을 축하하는 북 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미 이십 여권의 책을 낸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는 10년 만에 출판기념회를 한다면서 이벤트를 벌렸다. 그는 오래 전부터 ‘패쓰브레이킹 운동’을 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무언가 기성의 벽을 깨뜨리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는 믿음, 교회, 행복 앞에 ‘질문하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시리즈 3권을 냈다. 나는 서평자 3인 중 ‘질문하는 믿음’에 대해 말하도록 언질을 받았다. 저자는 질문이 없는 시대에 ‘질문하는’ 시리즈를 통해 먼저 말을 건네고 있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질문과 논쟁이 있지만, 유독 교회를 향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현실에서, 홀로 침묵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당장 책 제목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문제를 잘 드러냈다. 교회 안팎에서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잘 정리된 모범답안처럼 은행적금식, 문제해답식 질문과 대답은 있을지언정, 한국교회의 신앙풍토는 물음을 금기시 해 왔다. 오히려 당돌한 질문은 불신앙적 태도처럼 백안시당하게 마련이다. 한국교회는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인 ‘하브루타’를 모범처럼 인용하면서도, 우리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아예 봉쇄로 일관하였다.
북 콘서트는 서점 한 가운데 로비의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정면의 청중석은 교인들이 차지했지만, 뒤편 계단식 자리는 이미 젊은 독서객들로 만원이었다. 사실 중요한 손님은 초대받지는 않았으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면서도, 앞에서 진행하는 대화에는 귀 막고 있던 그들이었다. 얼마나 뜬금없는 풍경일까?
진행자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나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반응과 대답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행여 원맨쇼가 될 성 싶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쇼핑가 한 복판에서 진지하기도 쉽지 않았고, 지나치는 무수한 눈길들도 낯설고 따가웠을 것이다. 서평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불순한 불안감으로 한 시간의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저자사인회로 이어졌다.
모임 후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저자와 서평자 둘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두 당황스러웠다고 실토하였다. 허긴 교회 안에서 정성껏 귀담아 들어주는 교인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이방인의 시장 한 복판에서 홀로 외치는 격이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서평자는 사방에 우뚝 선 서가들이 마치 수만 명의 인문학 저자들이 지켜보는 것 같더라며 긴장감을 토로하였다.
어쩌면 저마다 자기 독서에 몰두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야말로 생경한 예수이야기는 낯선 종교인들의 독백같이, 소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돌아보니 그동안 교회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데 익숙했구나 싶었다. 이제 교회는 예배당의 틀을 벗어나 시장과 광장으로 나와서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내 전도일꾼처럼 호객하는 방법이 아니다. 시장을 지배하려는 방식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려는 방식이어야 한다.
저자가 시리즈의 이름을 ‘질문하는’으로 정한 까닭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국의 대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당시 교회를 향해 이렇게 질타했습니다. ‘지금껏 기독교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다.’ 여기서 시도되지 않는 기독교란 바로 그 예수 신앙, 본질적인 기독교를 말합니다.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우리는 변질된 기독교, 사이비 기독교, 미신적 기독교를 보아왔고 믿어왔으며 흉내 냈습니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놓고 그 내용에 어울리는 대답을 담아냈는지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적어도 질문이 질문다워서 의미가 있다. 우리의 경우 예수님에 대해 늘 입버릇처럼 말하고, 귀 벌레처럼 듣지만, 그러나 ‘홍수에 마실 물이 없듯’이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삶이 얼마나 부족한가?
그동안 종교를 제 입맛에 맞게 쇼핑해온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거듭 대답할 거리를 요구하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타령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에서부터 질문하는 사람이라면 징표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필리핀 마닐라침례교회 앞에는 ‘예수는 대답이다’라고 크게 붙어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킬킬거린다. “누가 물어봤대?” 그런 점에서 어느 칼럼에서 읽은 “뻔~ 한 교회는 그 앞날이 뻔하다”(정연수)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뻔~ 한 질문 속에 보물을 담아낸 김석년 식 질문방식은 오늘 분주한 세상을 향해 일상적인 ‘즉문즉답’을 요구하고 나선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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