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노루오줌
꼿꼿합니다. 푸르름만이 가득한 조금은 심심한 여름 산속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작지 않은 키로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뻣뻣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면 순하기 그지없습니다. 삐죽삐죽하게 보이는 꽃잎들도 얼마나 부드러운지 만나면 꼭 만져 보시기 바랍니다. 은은한 향도 일품이지요. ‘노루오줌’인 것이 억울할 법 합니다.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는데 뿌리를 캐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캐본다 한들 노루오줌의 냄새를 모르니 비교가 불가합니다. 이름을 얻을 때의 상황이 그랬구나, 상상만 할 따름입니다.
꽃을 보러 숲에 들 때 지금까지 노루오줌이 목표인 적은 없습니다. 산에서는 자주 만나기 때문이겠지요. 특별한 꽃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혹은 집중해서 셔터를 누르다가 참았던 숨 돌리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눈길이 마주치고 마주친 눈길에 뜨듯한 기운이 퍼져야 담을 생각을 하게 되는 꽃입니다. 노루오줌 중에 꽃대가 버거운 듯 살짝 옆으로 누운 아이들이 있는데 고개를 숙였다고 ‘숙은노루오줌’이라 부릅니다. 구별이 어려울 수 있으나 조금만 살펴보면 꽃이 모여있는 모양이 다릅니다. 둘다 빛깔이 하양에 가까운 것부터 진한 분홍빛까지 있는 곳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아스틸베’라는 서양이름으로 먼저 만났습니다. 어느해 여름, 교회 꽃꽂이를 하시는 분이 분홍빛 보송보송한 꽃을 투명하고 둥근 화병에 한아름 꽂아 피아노 위에 두셨는데 빛깔이랑 생김새가 눈에 쏙 들어와 일부러 찾아가 꽃이름을 물어보았지요. 볼륨감이 있고 털 아닌 털의 느낌 때문인지 절화(切花)에서 많이 쓰인다는군요. 꽃꽂이뿐 아니라 요즘은 원예종으로 더욱 화려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져 곳곳의 정원에서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띠는 강한 색깔로 오랫동안 피어있는 꽃들의 자극적인 아름다움과 사람의 간섭 밖에서 그들의 성격 그대로 살아가는 들꽃들이 데려가주는 평안하고 소박한 세계는 분명히 다릅니다. 제 모양 제 빛깔이 분명하지만 튀지 않고 주변에 어우러지는 그 겸손함이 제일 닮고 싶은 들꽃의 매력입니다.
류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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