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스펙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바쁘다. ‘spec’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specification’(명세서)을 줄인 말인데,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요건들을 갖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점을 잘 관리해야 하고 토익을 비롯한 어학 실력을 길러야 한다. 대학생들이 휴학을 하고 미국이나 중국 등으로 어학연수를 나가는 것을 흔히 본다. 그리고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이나 정보처리 기사 자격증 같은 각종 자격증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취업문을 통과하려는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스펙을 쌓는 것은 시험관의 눈에 들기 위해서이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낙원의 문을 통과하려면 하나님의 눈에 들기 위해서 열심히 스펙을 쌓아야 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 중심에 있는 믿음을 보실 것이라 믿고 스펙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눈에 띄기 어렵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믿음을 가늠하시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은 믿는 사람을 무조건 모두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하나님이 심판 날에 생명책에 기록된 각자의 행위에 따라서 낙원에 들어갈 사람을 결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생명책에 기록될 만한 일을 해서 스펙을 쌓아야 한다.
먼저 우리는 교회생활에서 스펙을 쌓을 수 있다. 각종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각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헌금도 많이 내면 좋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신앙생활을 하면 집사도, 권사도, 장로도 될 수 있다. 신학 공부를 해서 전도사나 목사가 되는 것도 스펙을 쌓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런 교회의 직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스펙을 쌓아야 한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예수님을 좇아 살아야 한다. 손양원 목사처럼 원수를 사랑하면 아주 큰 점수를 받겠지만, 이웃을 위한 조그만 배려도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에게 물 한 잔을 준 것이 바로 당신에게 준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사람은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좇아 살지 못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데에 소홀히 할 때가 많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사람은 학교 다닐 때 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자기네 집이 아주 잘 살았는데, 아버지가 김 집사에게 사기를 당해서 아버지의 사업이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그 후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시자 자기네 식구들 모두가 모진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사도 장로도 믿을 사람들이 못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감신, 한신 등 신학대학의 사태를 보면서 목사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교회생활에서 스펙을 쌓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스펙을 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기독교인이 그의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하나님도 그를 곱게 보실 리가 없다. 하나님의 눈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낙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예수님은 믿는 자는 모름지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실제 삶에서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지금, 우리의 신인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교회에서의 스펙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스펙이다.
아무리 교회에서의 스펙이 좋다 하더라도 사회에서의 스펙이 나쁘면 낙원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재석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