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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17-07-21 23:46
   
물러서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27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89 [207]


물러서서


며칠 전 ‘평화산책’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한 시민합창단에서 합창연습을 할 기회를 얻었다. 평화산책은 어디든 평화가 빼앗긴 곳을 찾아다니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저 실낙원의 저녁 즈음처럼 그 누구나 평화롭고 한가로이 삶을 거닐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노래로 전하는 시민합창단이다. 평화산책은 주로 거리에서, 농성장에서, 때로는 험악하고 거친 곳에서, 평화가 없는 곳이면 어디서나 아름다운 노래로 평화를 시위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성악으로 학위까지 마치고 오신 지휘자님은 거의 평생의 사명으로까지 생각하시며 이 합창단을 이끌고 계시다. 점점 더 실력까지 더해가는 이 거리의 합창단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흐뭇하고 기쁜 일인데 어쩌다 이렇게 연습의 자리까지 함께 하게 되다니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연습 도중 지휘자님은 한 대목에서 이렇게 요청하셨다. “여기서는 물러서서 소리를 내셔야 합니다.” 물러서서라, 잠시 그 말이 가슴에 머물렀다. 합창의 음악을 표현하거나 지시하는 여러 말 중에 나는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고 느꼈다. 참 근사하지 않은가, 작게도 아니고 약하게도 아니고 힘을 빼고도 아닌 물러서서라니. 쉬는 시간의 대화에서 지휘자님은 이 말로 유학시절 사용했던 독일어 zurück에 해당하는 말을 우리말로 표현하고 싶으셨다고 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고, 뭔가 한국말로 ‘물러서서’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적당한 말은 없고, 뭐가 있을까요,라시며. 사실 zurück은 영어의 back에 해당하는 단순한 단어다. 그러나 음악의 본고장에서 음악의 한 표현을 담당했을 때의 이 단어는 단순한 ‘뒤로’의 의미보다 더 깊고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서양 음악의 역사가 묻어버린 단어를 간단하고 적당한 우리말로 쉬이 옮기는 것은 아마도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상하게도 이 말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하여 그 자리를 떠나서도 이 ‘물러서서’는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러선다는 건 잠시 멈춘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마치 툭 쳤을 때 약간 움츠러들었다가 곧 다시 펴지는 어떤 꽃의 모습 같은 걸까? 여리디여린 무엇이 원래대로 다시 펴지기 전 약간 움츠러든 모습, 아마도 그런 느낌으로 노래하라는 뜻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말의 ‘저어하다’라는 말의 분위기도 담겨 있는 것일까? 그 의미가 무엇이 됐든 ‘물러서서’라는 말은 꼭 노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보통의 일상을 반복할 때, 또는 특별하게 힘이 들어가야 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어쩌면 이 물러서서란 말은 꽤 의미 있겠다 싶었다. 잠시 물러섰다 시작한다. 물러서서 바라보고, 물러서서 생각한다. 멈춰야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물러서야만 보이는 것도 있다. 삶도, 사랑도, 믿음도, 자신도, 타인도,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것은 늘 다른 모습이 되어 돌아오지 않던가. 물러서는 것은 멈추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뒤로 가는 것도 아니다. 물러섬은 언제나 그 안에 다시 앞으로 나아감을 예감하고 있다. 어쩌면 물러섬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니, 그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참되게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노안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고객이 기분 나빠할까봐 노안이라는 말 대신 ‘조절력 부족’이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바꾸어 사용하던 안경점 직원이 생각나 웃는다. 세월이 흘러 조절력이 부족해진 눈이 잘 보기 위해서는 조금 물러서야 하듯, 세월이 흘러 조절력이 부족해진 생각 역시 조금은 물러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를 드리셨다.” (눅 5:16)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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