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소 출하
살을 태우는 듯한 여름 해살이 연일 내리쬐고 있습니다. 진부령도 해마다 더 더워지고 있다고 장로님이 말씀 하셨지만 그래도 저녁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맞바람이 불도록 창문을 열어두고 창턱에 작은 선풍기를 하나 틀어 바람이 순환되게 한 후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듭니다. 서울의 열대야를 생각해 보면 진부령은 정말 시원한 곳입니다. 다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자활센터 농장의 암소가 7월 7일에 송아지를 낳아야 하는데 분만의 징후가 없어 지난 목요일에 수의사 선생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담당자가 출장을 간 상태여서 제가 대신 농장에 가서 어미 소의 분만 가능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미 소를 내진한 후 ‘자궁염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궁이 꼬여서 송아지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으니 이 상태로 송아지가 죽었으면 어미 소도 위험하다고 출하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종결정은 담당자가 했지만 어쨌거나 소는 그 날 저녁 바로 팔려나갔습니다.
다음날 출근을 해 보니 암소가 오전에 도축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소를 돌봐 온 반장님은 울면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송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3년 동안 기른 암소를 팔자니 속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반장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게 그래도 새끼를 배고 있는데, 이래서 사람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와요.” 반장님이 우시니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전날 농장에 수의사가 오자 소들이 이리저리 수의사를 피해 다니던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도축될 어미 소가 앞전에 낳았던 송아지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끼 밴 암소가 팔려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이 저도 슬펐습니다. 팔려나가는 것을 아는지 한사코 수의사를 피해서 다니던 암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한 동안은 그 암소의 눈망울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수의사의 차만 들어와도 소들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 안쪽으로 도망을 갑니다. 먹이를 주는 사람이 오면 가까이 와서 기다립니다. 어미 소는 송아지가 팔려 나가면 며칠 동안 먹이를 먹지 않고 웁니다. 소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본능적인 사랑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암소 출하는 지난주 동안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건입니다. 또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일은 바로 흘리분교와 용인의 한 초등학교와의 편지왕래였습니다. 큰아이가 용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학급에 영상편지와 손편지를 써서 먼저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급의 17명의 아이들이 큰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책으로 묶어서 보내왔습니다.
큰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저에게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라며 읽어보라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편지에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인 용인을 소개하고 앞으로도 자주 편지를 주고받자며 다정하게 그림도 그려 넣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또래 친구가 없는 큰아이에게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친구가 생기다니 신기했습니다. 국군장병아저씨께 편지를 써 본적은 있지만 안면이 없는 다른 학교의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왕래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찍어서 보내는 수고로움을 감당해 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가족, 이웃, 친구, 지역사회 등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산과 들과 바다, 동식물들이 또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암소가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생존을 위해 먹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탐욕스럽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를 대상화 시키면 고기일 뿐이지만 소를 기른 사람에게 그 소는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 주어야 하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송아지에게 그 소는 젖을 주는 어미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매일 먹고 마시는 것도 그것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발걸음을 조심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혜를 저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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