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직
거짓말 잘 하고 여자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무엘은 잘 생긴 흑인청년인데, 유람선을 운전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기에 바쁘다. 어느 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하룻밤을 함께했던 크리스틴이 한 아이를 안고 찾아온다. 자신의 아이라는 걸 인정도 않는 사무엘에게 20유로를 빌려서 타고 온 택시비를 내고 오겠다더니 그 맹랑한 여자는 그 길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 청년은 아기를 돌려주려 여자를 찾아 런던행 비행기를 탄다. 그런 과정에서 버니라는 프랑스 친구의 눈에 띠어 스턴트맨이 되고, 여자를 찾을 수도 없고 지갑과 여권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할 수 없이 런던에서 딸 글로리아를 키우며 스턴트맨으로 살아간다.
사무엘은 8년을 홀로 아이를 키우는데, 글로리아가 웃게 하기 위해 차마 엄마가 버리고 갔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비밀첩보 요원이어서 못 온다고 가짜 이메일로 크리스틴의 부재를 채워주었다. 어느 날 엄마가 실제로 메일에 응답을 하고 나타난다. 두 모녀는 재회를 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다른 남자가 있었고, 글로리아는 아픈 상태였다. 그나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세 사람의 행복은 크리스틴의 글로리아에 대한 양육권 주장으로 끝이 난다. 첫 재판에서는 사무엘이 승리한다. 그러나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친자확인소송에서 아버지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사무엘은 친권을 잃고 글로리아는 크리스틴과 뉴욕으로 떠나기로 결정된다. 경찰이 크리스틴의 친권을 강제집행하려 할 때, 결국 글로리아는 아버지 사무엘의 곁으로 도망쳐 돌아오고, 둘이 함께 프랑스 남부로 돌아간다.
딸이 실망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엄마가 딸을 버렸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거짓 이메일을 보내며 8년을 버티는 사무엘의 사랑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특히 스턴트맨으로서 감독이 글로리아에게 소리치는 것을 보는 대신 11층에서 떨어지는 신을 찍을 때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덕분에 사무엘과 크리스틴의 법정 싸움에서는 마음을 조리며 사무엘을 응원했었다. 작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투 이즈 어 패밀리’(Two is a Family.)라는 영화이다.
최근에 어느 자리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 지난 정권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하늘을 찔렀던 때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거짓말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정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보호라는 명분으로 거짓말이 옹호되기까지 한다. 도대체 거짓말이 선할 수도 있나?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나? 마크 냅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보호하거나 돕기 위해, 다른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사회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미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물론 거짓은 나쁘고 위험하며 결국 공동체를 깨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전통은 어떤 이유의 거짓이건 거짓을 배격한다. 신뢰를 깨뜨리고, 하나님께 속한 언어를 훔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귀를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8:44)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앞의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처럼 우리 현실에서는 거짓을 배격하는 정직이 때로 위험할 때도 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두 어머니 중에 한 어머니는 친어머니이고 한 어머니는 가짜인데, 차라리 둘로 나누자 할 때 친어머니가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가 친어머니 맞는데...’ 하면서 정직을 고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애매히 아기가 죽었을 것이다. 친엄마는 아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진실을 내려놓고 아기 살리기를 택한다. 물론 솔로몬이 지혜롭게 판단하여 친엄마에게 아기를 돌려주지만...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감신대생들이 민주당사에 찾아가 농성하려다가 교문위 국회위원, 의원보좌관에 ‘비리사학척결’을 호소했고 그들은 “감신대문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다. 학교의 문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물론 이사진을 비롯하여 교수들과 교단 어른들의 책임이 있고, 학생들이 감신을 ‘비리사학’으로 스스로 규정한 것도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교단신학교를 발가벗겨도 되는가 싶다. 학생들이 여기까지 달려가게 해야 했나? 조금 더 인내하고 책임 있는 어른들이 해결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그런 것을 동의하고 부추긴 목사나 교수들이 있다면 그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정직은 때로 위험하다. 정직은 때로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모교 감신대를 생각하면 아프고 힘들다. 제발 우리가 어디까지 싸워도 좋은지, 이렇게 자신들의 정의를 주장하느라 감신과 교회를 깨뜨려도 되는지, 생각하며 싸우라고 하고 싶다.
* (삼척제일교회 박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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