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가치와는 상충되는 성경 구절들이 많은데 그 말씀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도대체 왜 여성은 사람의 수를 셀 때 포함되지 않는 거죠? 예수님의 여자 제자는 없나요? 그녀들은 책을 쓰거나 설교를 하지 않았나요? 왜 여자는 침묵해야 하죠?” 도대체 우리가 사는 시절이 과연 21세기이기는 한가? 어디 내 놓아도 주체로서 야무지게 자기 몫을 잘 감당하는 젊은 여성들이 교회에만 들어오면 주눅이 든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최근 들어 교회 안팎에서 급작스레 붐을 일으키는 페미니즘 바람이 복음적인 선교 단체에까지 일고 있다. ‘갓페미’ ‘믿는 페미’... 권위를 가진 어른들이 조직하고 젊은이들이 행동대장이 된 조직이 아니다. ‘전통적’인 답이 자신들에게 해방감을 주지 못하자 스스로 질문들을 물으며 ‘신앙적’ 답을 찾기 위해 연대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다.
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답해야 할까? 무엇보다 자신들의 의미 추구가 행여 성서의 권위를 흔들거나 부정하는 것이 될까봐 노심초사,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독교’라 하여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는 것이 아니듯, 페미니즘도 하나의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들의 시각 또한 다양하다. 인류 문명사에서 가부장제의 역사가 무려 오천 년(기원전 3000년~최근까지)이다. 유대-기독교 공동체의 발생과 전개, 경전 작업의 시대를 볼 때 딱 가부장제의 한중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여성이 주체가 아니고, 여성 수는 사람으로 세지도 않으며, 여성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주장하며 기독교를 ‘넘어서야’ 비로소 페미니즘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메리 데일리(Mary Daily)나 캐럴 크리스트(Carol Christ)같은 ‘탈/후기기독교 페미니스트들(post-Christian feminists)이다. 만약 저 토끼같이 소심한 젊은 여신자들이 이 패러다임의 페미니스트들에 질문했다면 답은 뻔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마치 흑인이 KKK단 안에 들어가서, “왜 백인들은 흑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죠? 왜 여러분의 텍스트에는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없나요?”하고 묻는 것과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를 떠나라고. 그래야 비로소 여성이 해방되는 거라고.
하지만, 안심하라. ‘기독교’를 응시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패러다임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니까. 모든 패러다임들을 다 소개하기엔 이 지면이 짧다. 하지만 적어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성경을 바라보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인정해야할 한 가지가 있다. 성서 안의 계시와 신앙고백적 언어들은 모두 ‘남성들’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머나, 하나님의 계시는 보편적인데 남성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내용이 달라지나요? 그럴 리가. 남성들이라 해도 자신들의 실존적, 문화적 제한성을 뛰어넘어 계시를 전달했다면 그 계시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성을 넘어 ‘보편적’이었을 거다. 모두를 살렸을 거다.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지 못하다. 그야말로 유한자다. 여성이 인격체나 주체로 여겨지지 않던 ‘강한 가부장제’(strong patriarchy) 한중간을 관통하며 쓰인 경전이 성서라면, 그 자료의 수집과 편집과 수록 과정 중에 묘사된 여성은 과연 여성들 자신의 해석이었겠나?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내가 늘 묻는 질문이 있다. 십계명의 제일 마지막 계명을 기억하느냐고. 거기서 네 이웃의 소유(집, 가산)를 탐내지 말라는 금지 명령에는 이웃의 재산목록이 이어진다. 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가축들. 여기 빠진 것이 무엇인가? 성서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지키려한다면, 앗싸~ 남의 남편은 탐해도 되는 걸까? 설마, 10계명의 핵심이 그럴 리가 있을까! 성서는 철저하게 남성 저자가 남성 청중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다. 남자가 가장, 그러니까 집의 주인이다. 이 내용은 자기 재산을 소유한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말이라는 점이 ‘가려져’ 있다.
남자가 남자에게! 이런 텍스트에서 오히려 놀라워해야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강한 ‘실재’였기에 전달할 수밖에 없었을 보편적 평등의 메시지다. 그러니 자유하라. 성경은 직물과도 같이 씨줄과 날줄로 엮인 텍스트이다. 경(經)자는 세로로 줄을 고정하고 하는 작업을 형상화 하고 있다. 자고로 경줄이 견고히 고정되어 있어야 베짜기가 가능하다. 성경 안에는 여성은 물론 수많은 약자들을 높이시고 교만하여 홀로 군림하려는 자들은 끌어내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경줄’로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 그 보편적인 계시를 보석처럼 찾아내고, 당시의 문화적 전제들로 제한받은 부분은 오늘의 새로운 문화로 ‘맥락화’(contextualization)하는 것이 산 신앙이다. 새롭게 옷감을 짜듯 살아내자. 그것이 ‘믿는 페미니스트’가 해야 하는 작업이니.
백소영(이화여대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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