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지식의 발전사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인류의 시야를 확장해준 사람들을 거론할 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포함시키는 것에 주저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칼 세이건, 코넬대학 교수였던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80년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약 5억 명이 시청했던 전설적인 우주 과학 다큐멘터리였다. 이 전설적인 시리즈는 2014년 새롭게 리부트되기도 했다. 34년만의 새 후속작에 오바마 전대통령은 추천사를 보탰고, 시리즈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전 세계 171개국에 동시 방송되었다. 다른 모든 과학적 기여에 앞서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끼친 가장 큰 공헌은 무엇보다 우주의 광대함을 인류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책 가운데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은 1990년 2월 태양계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가 전송한 지구의 모습이 그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보이저 2호가 보여준 지구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던 커다랗고 파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아 동명의 제목으로 책을 저술한 것이다. 다음은 이 책의 한 대목이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위대한 천문학자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 광대함을 인류에게 일깨워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이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체감하여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휴머니즘, 즉 인간을 만물의 근본으로 삼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기치 아래 인간은 오만하게 이 지구의 정복자요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모든 개개인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구호로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세상의 중심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기중심적 나르시시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허망한 착각인지. 때때로 우리는 제 정신이 들었을 때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이 아무 일 없이 잘만 돌아갈 것이란 생각에 문득 놀라곤 한다.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보자던 옛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가끔씩 하늘을 보며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 이 지구는 얼마나 큰지, 동시에 같은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얼마나 티끌 같고 먼지 같은지, 그리고 그 속의 나는 얼마나 작고도 작고도 작은지.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다음과 같이 아내를 향한 헌사를 바쳤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아무래도 인간은 스스로를 작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사랑의 의미, 더 나아가 신의 의미를 깨닫는 존재인가보다.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시 144:3)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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