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활하셨습니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주님의 반년’과 성령강림과 함께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는 ‘교회의 반년’으로 나뉜다. 하나님의 시간을 매듭과 매듭으로 묶고, 마디와 마디를 나눈 셈인데, 그 절정은 부활절이다. 교회력은 모든 절기가 거룩하듯, 연중 모든 날들이 거룩함을 일깨워 준다. 모든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다.
그리스도교 달력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는 부활절이다. 부활주일은 ‘춘분이 지나 첫 보름달이 뜬 후 오는 주일’에 지키는데, 태양력을 기준으로 해마다 3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사이에 위치한다. 앞에 오는 40일, 즉 사순(四旬)절이 부활절의 전주곡이었다면, 뒤에 위치한 50일, 곧 오순(五旬)절은 부활절의 계속이다. 부활절기는 성령강림주일 전까지 모두 일곱 주간 동안 이어진다.
부활주일은 안식일 자정을 넘기면서 벌써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동터오면 부활을 축하하는데, 그 인사는 성경의 전통에 따른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막 16:6). 천사의 전언에서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인 부활절 인사가 나왔다.
주후 4세기, 스페인 사람 에테리아(Etheria)는 팔레스타인 성지를 순례한 후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예배형태를 기록하였는데, 지금도 예루살렘에 있는 정교회에서는 초대교회의 전통대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부활절 인사이다. 먼저 인도자가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선창하면, 예배자는 일제히 “주님은 ‘정말’ 부활하셨습니다!”라며 화답한다. 특히 후창을 하면서 ‘정말’을 강조하는데, 우리 교회의 경우 모두 ‘정~말~’을 율동미 있게 외치며 즐거워한다.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우스 대주교는 그리스정교회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그리스인들은 부활절기 7주간 내내 전통적인 부활인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니지 않는 사람도 마치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 하듯 서로 부활축하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축하 인사를 부활주일 단 하루만 하는데 비해, 그들은 49일 동안 내내 일상적으로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정교회 신앙전통에 대해 큰 자부심을 나타냈다.
한국에 거주하는 세계 각국의 정교회 교인들은 주일마다 한국정교회 예배당에 모여 따로 예배드리는데, 부활주일만큼은 함께 모여 축하한다고 하였다. 러시아정교회를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정교회교인들은 각각 자기 언어로 부활 축하인사를 나누는데, 그 순간 큰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인사하는 거대한 웅성거림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화성이며, 환호성이라는 것이다. 성령강림 이전에 부활주일에 이미 언어의 일치를 경험하는 셈이다.
공통적인 풍속 중 하나는 부활주일에 ‘삶은 계란’을 나누는 일이다. 물론 이 풍속은 아직 전통이라고 불리기에는 설 부른 측면이 있다. 독일전설에 따르면, 한 가난한 여성이 자기 아이들에게 줄 계란을 숲속의 둥지에 숨겨놓고 아이들더러 찾아보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계란을 찾아낸 순간,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래서 토끼가 계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끼가 ‘부활절 토끼’란 명예로운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요즘 한국의 유치원에서도 부활절 풍속을 소개할 때 먼저 토끼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뭔가 앞뒤가 바뀐 느낌이다.
동물의 생태를 연구한 소설가 아담스(Richard Adams)는 토끼의 성격을 이렇게 분석하였다. ‘토끼는 알지 못하면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이는데, 먼저 놀래서 깡충 뛰고 그 다음에는 의심스럽게 조심조심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런 농담이 생겨났다. “토끼처럼 의심을 품지 말고 부활을 믿어라. 심지어 토끼도 믿는데..”
주님의 부활을 의심한 사람으로 도마를 손꼽는 데는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의심하는 인간의 대명사’와 같은 불명예를 쓰고 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난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기를 원하였다. 실증적인 인간인 도마는 반골처럼 오해를 살만하다. 실은 복음서가 들려준 제자 도마는 얼마나 용기 있고, 실천적인 인물이었던가(요 11:16)?
독일 뮌스터는 30년 종교전쟁 후 베스트팔렌조약을 맺은 곳으로 유명하다. 평화조약을 한 기념관 중앙에는 열두 제자와 사도 바울이 새겨진 큰 목판부조물이 걸려있는데, 제자들 중 누가누구인지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비교할만한 자료사진이 있을 리 없지만, 제자들은 자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다.
이를테면 커다란 열쇠를 든 제자는 베드로이다. 유럽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안드레는 ‘X 자형 십자가’를, 사도 요한은 책과 잔을, 전도자 빌립은 성경과 긴 지팡이를, 다대오는 도리깨를 들고 있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을 대표하는 상징은 창이었다. 그러면 ‘의심 많은’ 도마를 상징하는 물건은 무엇일까? 도마는 ‘직각 자’를 들고 있었다.
도마를 상징하는 직각자를 보면 교회의 전통은 그를 의심하는 불신앙적 인물이 아니라, 더 정확한 믿음을 추구한 제자로 이해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다. 직각자는 정확, 무오류를 뜻하고 있다. 도마의 경우를 보면 부활신앙은 그런 의심의 껍데기를 벗어내고 더욱 선명하게 피어났음을 깨닫게 한다.
한국정교회 본부에서 부활절 메시지를 담은 반가운 편지를 보내주었다. “우리는 슬픔과 비탄이 우리 마음에서 기쁨을 훔쳐가려고 할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기쁨이 온 세상에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부활은 단 하루 동안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365일 모두가 기뻐하고 선포해야 할, 과연 복음 중의 복음이구나!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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