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의 꿈
진부령에도 익숙하지 않은 5월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5월이면 추워서 발도 담그기 어렵던 계곡 물이 올해는 따듯해서 몸을 담그고도 남습니다. 시원한 저희 동네도 30도를 웃도는 기온을 보이고 있으니 주택과 자동차가 밀집된 도시는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갑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후가 변하는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한 작은 실천에도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래 저희 교회 고등학생인 현미(가명)가 강원 도민체전에서 여자 사격 5위, 단체전 1위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여자 사격에서 4위를 했었습니다. 현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기소총 사격 훈련을 받았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도 사격을 했지만 가정형편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에는 남자 사격부만 있고 여자사격부가 없어 더 이상 사격 선수로 훈련을 받지 못합니다. “이제는 정식 훈련생이 아니라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현미, 도민체전이 열리면 단기간의 훈련만 받고 잠시 공기소총을 잡아보는 마음이 오죽할까 싶습니다. 남편과 저는 선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의 사격훈련을 지원하지 않는 학교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며 머리를 맞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일에 도민체전을 마치고 온 현미가 “엄마가 00고(관내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가도 된다고 했어요.”하고 말을 했습니다. 00고등학교에는 여자 사격부가 있고 코치도 현미에게 전학을 와서 함께 사격부에서 훈련하자고 했다고 했습니다. 정식으로 다시 사격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내기가 쉽지 않아 꿈을 포기시켜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쓰렸을까요? 중고등학생시절 훈련은 지원이 되지만 졸업 후에는 그렇지 않으니 미래가 걱정스러운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어쨌거나 어머니도 허락을 하셨고 여자 사격부가 있는 학교에서도 오라고 했다니 정말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혼자서 그만 공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현미가 전학을 가고 훈련을 잘 받아 국가대표가 되고 대학도 들어가고 국제대회에도 출전하는 미래를 꿈꿨습니다. 옆에 앉은 현미에게 “전학 가서 열심히 훈련받는 거야. 취업을 하는 것은 한두 해 늦어도 할 수 있어. 지금은 네가 하고 싶은 사격에 올인 하는 거야.”하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뒷받침이 부족해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안 되니까 후원회를 만들어서...’하면서 제 머릿속에서 저는 이미 군청과 교육청을 다니며 후원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만나기 힘든 한 학생의 미래가 옆에 앉은 타인인 저까지도 행복한 공상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꿈을 먹고 삽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스스로 꿈을 선택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청소년기는 정체감의 혼란의 겪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 어른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자기의 꿈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고 한다면 그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미는 자신이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고 있으니 참으로 행운입니다. 현미의 꿈에 격려와 축하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요즘도 제가 하는 일의 미래를 그려 보면서 가슴이 뛰는지 확인해봅니다. 나이 마흔에도 가슴이 뛰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단 한 번의 인생, 진부령 산골짝에서도 꿈꾸기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어린 학생의 꿈을 응원하면서 누구에게나 삶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원하시는 저의 인생과 제가 꿈꾸는 저의 인생이 일치하여 뛰는 가슴으로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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