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5월 첫 주의 긴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어린이의 달이자 어버이의 달이자 스승의 달이기도 하며 남편과 작은아이의 생일이 있는 5월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어린이주일은 어버이 날을 하루 앞두고 있어서 교회에서는 어린이날 선물과 어버이날 꽃을 같이 준비해서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쵸콜렛 과자를 받아들고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손자 같은 군인 장병들이 꽃 코사지를 들고 와 가슴에 달아 드리는 이벤트로 하루 이른 어버이날을 맞으셨습니다. 작고 소박한 선물이고 행사이지만 모두에게 기쁨이 되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지난 주 저희 집의 두 아이는 5월 4일(목)이 학교 재량휴업일이 되면서 연휴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큰아이는 탁구나 배드민턴처럼 공을 주고받는 오고디스크라는 체육 놀이감을 선물받기를 원했고 작은 아이는 작은 장난감 배를 선물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일대에서는 살 수 없는 물건이어서 남편과 저는 아이들의 선물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택배 박스를 예수님 오신 것처럼 부여잡고 얼른 뜯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이들은 올해 어린이날 선물에 대만족했습니다.
저도 황금연휴를 보내기 위해서 5월 4일에는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저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양구의 국토정중앙천문대 캠핑장에서 2박 3일을 보냈습니다. 아랫마을 목사님 가족과 함께 한 이틀은 길고도 짧았습니다. 아이들은 4박 5일은 캠핑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별로 한 일이 없는 저는 2박 3일로도 체력이 고갈되었습니다. 어린이날에는 아침을 먹고 양구 통일전망대와 제4땅굴에도 가보았습니다. 천문대도 들리고 곰취 축제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입장료는 모두 무료였고 예쁜 색연필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골은 어디를 가도 정이 넘친다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했습니다.
캠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작은 아이는 마냥 즐겁고 또 가고 싶다고 했지만 큰 아이는 “엄마가 짜증을 내서 싫었어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누나들이 그렇다고 하는 말을 누군가 한 적이 있긴 하지만, 큰아이가 다른 친구가 있으면 작은아이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번 캠핑에서도 제 눈에 그런 모습이 들어왔고 저는 속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체력이 고갈되어 가니 인내심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저는 큰아이의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캠핑까지 가서 어린이날 짜증을 낸 이유를 말하라면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잘 데리고 놀지 않아서’라거나 ‘큰아이가 짜증을 내서’라고 핑계를 대겠지만, “엄마가 짜증을 내서 싫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저의 핑계가 무색하기도 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큰아이가 짜증을 자주 낸다고 생각하는 저의 생각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면 짜증을 냅니다. 큰아이가 짜증을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저의 뒷모습일 것입니다. 저의 앞모습은 타인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애쓰다 보니 피곤하고 지친 저의 뒷모습은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앞모습 때문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 화를 ‘버럭’하고 내버릴 수 없으니 소심한 화(짜증)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큰아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고 학업에도 성실한 아이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못합니다. 자기 뜻을 꺾고 타인과 맞춤으로써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아이는 그와 다릅니다.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밝히고 원하는 것을 얻어갑니다. 그리고 관계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큰아이가 보기에 작은아이는 얄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만을 바라는 아름다운 환상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저 아이들의 세상에도 희로애락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부족함을 지적하기 전에 저 자신의 뒷모습을 먼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어린이날 캠핑에 ‘엄마의 짜증’이라는 찬물을 끼얹고 말았지만 올 해 실수는 내년 어린이날에 만회해 보자고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저도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큰아이에게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타인을 향한 돌봄과 사랑은 제가 저 자신을 세심하게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심리적 경계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주인공이 또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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