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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17-05-05 04:33
   
다 큰 어린아이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46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02 [267]


다 큰 어린아이


  몇 해 전 일이다. 군포에 있는 어느 장애인복지센터의 예배에 설교 요청을 받았다. 사업장을 겸한 센터는 15여명 남짓 함께 하고 있는데, 모두 인근에 있는 자기 집에 살면서 날마다 센터로 출근하고 있었다. 설교를 부탁한 분은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미리 언질하기를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의 나이는 어린아이 같다고 하였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해야 할 경우보다, 오히려 원고가 필요 없다는 상황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긴 지적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전혀 없는 사람에게 설교하는 일은 훨씬 어려운 법이다. 어른들 앞에서 유치부 설교 하듯 하면 될까, 막연히 닥칠 상황을 연상하며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일 년 동안 설교한 일이 있다. 겨우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 주일이 돌아오는 때면 늘 불안하였다. 설교를 듣는 청중이 대부분 치매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반응이 없는 설교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그때 배웠다. 사실 노인들은 설교자와 눈동자를 마주칠 능력도 없었다. 다만 친숙한 찬송을 부를 때면 마치 기억의 저편에서 그분들의 등을 떠미는 듯 일시적 반응을 보였다. 


  우선 성경에서 가장 친숙한 본문을 준비하고, 어린아이에게 어울리도록 스토리를 구성하였다. 어짜피 비정상적 상황이라니 ‘닥치면 될 테지’라는 자포자기 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침 센터에 도착해 보니 흥미롭게도 준비한 본문이 장애인복지센터의 표어이기도 했다. 강단 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붙어있었다.

 
           
  미리 염두에 둔 상황마저 도착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졸지에 깨지고 말았다. 같은 센터에 속했지만 15명 개개인의 지적 능력은 저 마다 큰 편차가 있었다. 그중에는 드럼을 배워 반주를 돕기도 하고, 심지어 대표로 기도를 준비한 이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기대한 대로였으나, 그 중에는 ‘다윗’과 ‘가위’를 구분하지 못해 자꾸 ‘가위’를 연호하는 여성도 있었다.

 

  예배는 ‘그냥’ 평화로웠다. 설교자가 진땀을 빼든 말든, 대부분은 예배를 더 없이 즐기고 있었다. 찬양하다가 아는 곡이 나오면 자연스레 일어나 춤을 추었고, 설교 시간에도 마음껏 듣는 대로 주워섬기며 응답하였다. 대표기도자는 앞뒤 논리를 따지지 않았고, 드럼을 치는 이도 그저 시늉을 내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잘 짜여진 비장애인들의 예배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예배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특징은 번번이 자유롭게 응답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응답은 예배에서 기본 중의 기본요소 아닌가? 대부분 비장애인들은 체면 때문에 자유로운 예배를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한다. 그들의 높은 지적 능력이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예배는 경직되고, 부담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놀랍게도 장애인공동체의 예배는 진땀을 흘리던 설교자에게 결국 자유를 주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예배가 신나게 느껴졌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와 같은 그들은 애초부터 미움과 갈등을 모르는 듯 보였다. 간혹 심리학적으로 ‘성인아이’라고 불리는 소위 정상인들은 얼마나 공동체에 화를 불러오고, 평화를 깨뜨리던가?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마음의 장애든, 공동체의 장애든 부분적인 결함을 지니고 산다.


 
  예배를 드린 후 며칠이 지나 그들과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체육행사에 참석했는데 장애인 형제들은 내 주위를 맴돌며 친근감을 보였다. 며칠 전에 만난 진땀을 빼던 그 사람을 알아보고 악수를 청해왔다. 자기가 누구라고 다시 일깨워 주고, 종이컵에 담은 커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들은 체육대회에 참가할 능력은 못되었으나, 그곳에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팔았다. 한나절 내내 무리지어 서 있으면서 가끔 눈길만 주어도 그 때마다 반가워하던 모습은 정말 ‘다 큰 어린아이’였다.


  그날, 장애인복지센터를 둘러보다가 이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기쁨꽃가게는 꽃을 팔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꽃을 파는 사회적기업을 지향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 예배는 그들의 ‘별 볼 일 없는’ 삶에 의미를 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자꾸 인정해 주는 일이 아닐까? 그들과 함께 한 부산한 예배를 통해 배운 한 마디 명심보감이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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