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결 소리
제가 지휘하고 있는 합창단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늘결 소리’합창단입니다. 누군가 일부러 지은 별명은 아닙니다만, 우리 단원들 말로는 제가 연습이나 리허설 중에 가장 많이 쓰는 ‘하늘결’이란 단어를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별명이라는 것이 짓고 싶다고 지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 별명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와 자발적인 사용이 있어야 별명이 살아남고 별명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좋건 나쁘건 간에 정착된 별명에는 힘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별명은 이름이나 외모를 희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무의식에 가까운 습관으로 하는 행동이나 언어를 차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늘결’이라는 별명은 참 좋은 별명이요 영광된 별명입니다. ‘하늘결의 노래’와 ‘하늘결의 삶‘이 어느새 제가 쓰는 가장 흔한 단어가 되었고 습관이 되었으며 길벗들의 마음까지 얻었다니 말입니다. 무언가가 습관이 되었을 때 진정 나의 일부가 된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음정이나 박자 혹은 타고난 목소리나 기술을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노래의 ‘결’입니다. 결이 아름답고 일정한 노래는 다 아름답습니다. 심지어 음치, 박치의 노래도 그 노래의 결이 살아 있으면 아름답게 들립니다. 우리 각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우리네 어머니가 불러주셨던 자장가일 것입니다. 가끔 제게도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만 이 땅의 어머니들이 다 명가수가 아닐진대 왜 내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기억되는 것일까요? 그 노래에 나를 향한 결이, 본능적이고도 충만한 사랑의 결이 일정하게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한다는 것은 매우 영적인 행위입니다. 우리는 종교적 가사나 선율이 있는 노래를 영적인 노래로 국한시키곤 하는데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든 노래에는 하나님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습니다. 간혹 대중음악이나 민요에서 왠지 모를 천국의 파편 혹은 거룩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노래가 다 그렇습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의 노래함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참된 노래는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인간에게 불어 주신 생기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생기의 거룩한 순환에 우리는 노래를 통해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노래의 결은 하늘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흠향하셨다던 아벨의 제사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결’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어느새 제 노래와 신앙과 삶의 중요한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고작해야 작은 구멍 사이로 천국을 얼핏 보기만 한 우리는 여전히 부정적인 것을 통해 그에 반한 참된 것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 속에 있습니다. ‘하늘결소리’가 아닌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한 노래, 고상한 것이든 아니건 간에 자기 과시를 위한 노래, 억누르고 분노하는 노래, 선동하는 노래, 다른 목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노래, 저속한 다운비트와 동물적인 두 박자 리듬에 함몰된 노래...여기저기에서 대선 유세 노래가 들려오는 요즘, 참 하늘결 따라 노래하고 살기 힘든 시절입니다. 어서 이 혼탁한 시절이 지나 우리 민족이 함께 목 놓아 부르는 ‘하늘결 노래’를 그려봅니다.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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