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불짜리 이마
한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무척 따듯해진 날씨 덕에 지난주에 나름대로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첫째는 꽃모종을 사다가 교회 주변에 심은 것과 해바라기를 기르는 집에서 얻은 해바라기 씨앗을 심은 것이고 둘째는 산 두릅을 따기 위해 뒷산에 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곰취 장아찌를 5박스 담은 것입니다. 다채로운 한 주를 보내면서 해마다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어떤 것이 두릅인지 몰라서 따서 먹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첫해에는 그냥 주시는 대로 받아서 먹었고 작년에는 개두릅과 산 두릅 땅 두릅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올해는 두릅을 직접 채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릅나무에 초록 싹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남편과 주말에 장화를 신고 뒷산에 올라가서 긴 나무 끝에 자란 두릅을 잘랐습니다. 나무가 워낙 키가 크고 가시가 있어서 채취가 쉽지 않았습니다. 노력 끝에 남편과 저는 손가락만한 작은 두릅 예닐곱 개 정도를 채취 한 후 만족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두릅 야채 죽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상당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산에 홀로 살아도 먹을 것을 구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엉뚱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다음 날 주일 예배 전에 장로님이 오셔서 뒷산을 보시더니 두릅이 많이 자랐다며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뒤를 작은 소쿠리를 든 저와 큰아이 그리고 고등학생 한 명이 따라서 올랐습니다. 장로님이 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여기도 두릅, 저기도 두릅” 하셨습니다. 과연 전날 남편과 제가 딴 것보다 훨씬 큰 두릅들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아무나 심마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눈에는 안 보이던 큰 두릅들이 장로님 눈에는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예배 전에 두릅도 따고 고사리도 찾아보았으니 큰 성과였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먹을 수 있는 산야초로 당귀와 다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심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산야초로 머위, 쑥, 질경이, 민들레, 다래, 당귀, 두릅, 고사리가 집 주변에 지천으로 있습니다. 약을 뿌리는 사람도 없고 비료를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산에서 홀로 났다가 홀로 시들어가는 산초입니다. 머위를 잘라서 장아찌를 담가보니 쓴맛이 강해서 아이들이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 말씀이 바로 그 쓴 맛이 약이 되는 것이랍니다. 질경이와 뽕잎은 가루로 만들어서 마시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래도 따서 무쳐 먹어볼 생각입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그냥 거기 있는 것을 채취만 하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작은 아이가 두 달째 이발을 하지 않아 앞머리가 눈을 찌르려고 하기에 제가 임시로 집에서 앞머리를 일자로 잘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저와 함께 속초에 나가서 이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용사가 앞머리를 조금 짧게 자르는 바람에 앞머리가 눈썹에서 1센티 이상 올라갔습니다. 작은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앞머리가 짧다고 투정했습니다. 그리고 이틀째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뒤 짱구였던 작은 아이는 어려서 넘어지기만 하면 이마가 제일 먼저 ‘쿵’하고 찧었습니다. 찧은 곳을 또 찧기도 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이마가 위험하다고 느끼는지 앞머리를 눈썹까지 길게 내리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합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아이의 볼록 튀어나온 이마가 썩 멋진데 자꾸 가리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저는 기회만 있으면 “**이 이마는 백만 불짜리야. 큰 사람이 될 이마지.”하고 말했습니다. 샤워를 한 후 “백만 불 이마 한번 보여줘”하고 말하면 작은아이는 기분이 좋으면 씩 웃으며 머리를 옆으로 걷고 보여줍니다. 어느 날은 “엄마 아빠 수요일, 금요일, 주일에는 제가 이렇게 백만 불짜리 이마를 보여드릴게요.”하고 큰 선심 쓰듯이 앞머리를 쓸어 넘겼습니다. 예배가 있는 날에는 멋진 이마를 보여주고 저희에게 힘을 주겠다는 나름의 배려입니다. 8살짜리 남자아이가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옆으로 쓱 넘기며 “백만 불짜리 이마 한번 보세요.”하고 의기양양 이야기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웃음이 절로 납니다.
이제 작은 아이에게 자주 다치는 이마, 유난히 튀어나와 있던 이마, 가리고 보호해야 하는 이마는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하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뭘 더 할 필요도 없이 손으로 쓱 머리를 쓸어 넘기기만 하면 “아이고, 백만 불짜리 이마네.”하면서 좋아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 이마를 가지고 태어났을 뿐입니다. 뭘 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산에 지천으로 있는 산초들은 지으신 그대로 그냥 거기 있어왔습니다. 작은 아이의 이마도 지으신 그대로 처음부터 짱구였습니다. 뭔가를 더 잘 자라도록 뿌리지 않아도 되고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그 무엇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의 ‘백만 불짜리 이마’는 무엇일까요? 저의 ‘산초’는 무엇일까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니 어렵게 배우거나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저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저에게 주신 것, 이미 제 안에서 있는 것을 사용하여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백만 불짜리 이마’를 사용하는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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