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지난주 진부령에 올해의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눈이 왔습니다. 이제는 내리기는 해도 금세 녹아버리니 생활에 큰 불편이 없고 기온도 많이 올랐습니다. 서리가 내려 얼어서 죽을까봐 걱정되어 한동안 집 안에서 기르던 상추와 치커리 모종도 마당 한 구석에 심어보았습니다. 햇빛을 받으니 더 싱싱해 지고 튼튼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당에서 뛰어놀던 작은 아이가 “엄마 오늘은 비타민D가 좀 생겼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식물도 아이들도 마당에서 광합성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학교 운동장에 연을 날리러 갔습니다. 연이 난다기 보다는 아이들이 연을 끌고 뛰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어쨌거나 연날리기는 반쯤 성공을 했습니다. 한참을 끌려 다니다가 잠시 잠깐 바람을 타고 날던 작은 아이의 가오리연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심긴 큰 잣나무에 걸려서 돌아오지 못했고, 계속 질척한 운동장에 머리를 찧던 큰아이의 가오리연은 부상을 당해 더 이상 날지 못했습니다. 울상이 된 두 아이를 보면서 멋지게 연을 날리는 법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 아쉬운 남편이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연을 좀 많이 날려볼걸 그랬다.”며 케케묵은 과거를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야심차게 놀이를 준비했다가 온 가족이 울상이 되는 일은 일상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내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습니다. 운동장에 놓여있는 둥그런 원기둥 통을 타는 놀이였습니다. 한 아이가 통 안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가 밀어줍니다. 통 안의 아이는 머리카락에 흙이 묻는지도 모르고 신이 나서 “더 빨리”를 외쳤습니다. 이렇게 몇 번 놀고 나서 두 아이가 함께 들어가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두 아이의 몸무게를 합치면 제 몸무게와 비슷합니다. 둘을 넣고 통을 미는 일은 버거웠습니다. 한명씩 타야 밀어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한 명만 남고 나머지 한 명은 나와서 통 미는 것을 돕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맞습니다. 어린아이의 힘이라도 보태니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렇게 주말에는 저도 가족 비타민D 총량 증가에 동참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올해로 결혼을 한지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2007년 4월의 어느 날 백년가약을 맺고 십년이라는 시간을 두 아이를 낳고 길렀습니다. 그동안 도시에서 단독목회를 하다가,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시골로 단독목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하면서 남들처럼 살았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내 집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어엿한 독립가정이 되어 모험 보다는 안정과 공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큰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남편과, 숙제를 하며 짜증을 내다가 아빠에게 혼이 나서 우는 큰 아이, 눈치를 살피며 책을 읽고 있는 작은 아이, 그리고 함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열심히 칼럼을 쓰며 앉아있는 저까지, 이 모든 풍경은 1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며칠 전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짐짓 엄한 말투로 “여보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꽃이랑 케익을 꼭 사오도록 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방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큰아이가 제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엄마는 왜 맡겨놓은 것처럼 말을 해요?”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웃겨서 큰아이에게 “10주년은 특별하니까 그런거야. 말투는 장난으로 그렇게 한거야.”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빠한테 뭘 해 주실 건데요?”하고 큰아이가 다시 묻습니다. “음... 그럼 그냥 외식을 할까?”하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이제 저도 상황을 봐가며 말을 해야 합니다.
돌아보니 지난 10년간 저희 가족 건강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출생 사진부터 공작가위로 앞머리를 쥐 파먹은 모양으로 잘라 놓은 바보머리 사진, 한여름에 겨울 부츠를 꺼내 신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작은 아이 4살 사진, 서울시청 앞에 버젓이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아이들 사진, 10년간의 사진들을 꺼내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함께 마음을 다해 목회하며 가정을 세워 온 저 자신과 남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어서 달라”고 떼쓰는 것도 친밀한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십사하고 떼씁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케익과 꽃은 꼭 받고 싶다고 떼씁니다. 우리들의 소박한 떼씀이 큰 흠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날들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날도 지켜주실 줄로 믿고 오늘 하루 마음 푹 놓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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