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
천 일이 지나고 나서 그 배는 다시 떠올랐다. 꺼내기로 결정한 지 단 하루만에. 이렇게 간단히? 어처구니없고 기괴한 사건이었다. 3년 전 참극이 일어난 이후 이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분란을 겪었다. 사고를 사건으로 만든 것에 대해 항의하던 사람들은 사고를 정치적인 문제로 만든다는 누명과 오명을 뒤집어썼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유가족이라는 말도 얻지 못한 채, 심지어 그 말을 희망하며 상상할 수 없는 천 일을 견디어 왔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올라오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이후로부터 일어났던 모든 일에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훨씬 전에, 사고 원인과 수습 절차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기도 전에, 발생할 수도 있는 시신의 유실이 어쩌면 일어나기도 전에, 참사 후 단 하루만에, 배는 다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모든 항의와 요구에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던 자들이 실상은 가장 정치적으로 이 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이 추악하고 너덜너덜한 사실이, 떠오른 배와 더불어 함께 떠올랐다. 이 간단함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이상한 일이 있다. 천 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배를 보면서 그 천 일의 시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사고의 첫 소식을 비춰주던 TV 화면도, 모두 살았다는 오보도, 그 후로 벌어진 국가와 미디어의 거짓과 은폐도, 모든 소리와 상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신기한 일이다. 마치 그때로부터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그렇게 배는 멈춘 시간과 함께 다시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상한 느낌에 대해 생각하던 중 역시 마찬가지로 이상한 성경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호수아 10장. 거기엔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치렀던 여호수아의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중 이미 부여잡은 승기를 놓치기 싫었던 여호수아는 날이 저물어가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이대로 기회를 놓쳐버리면 적들은 다시 힘을 모아 백성들을 괴롭힐 것이다. 또 다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백성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여호수아는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태양아, 머물러라! 달아, 머물러라!” 그러자 태양이 멈추었다. 달이 멈추었다. 시간이 멈추었다.
배가 떠오르기 시작하던 날 강원도의 하늘에는 리본을 닮은, 색깔마저 정말로 노란 구름이 떠올랐다. 이 신기한 구름은 단박에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하늘도 아이들을 생각하나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만일 지금이 여전히 기적의 시대였다면 이 공교로운 우연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신의 징표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신의 징표일지도 모르겠다. 저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라, 마음속에 멈춰버린 이 시간이야말로. 이제,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배가 떠오른 순간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 기초적이고 간결한 질문은 질문만큼이나 간결한 해답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는 그 누구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도록, 이미 입은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백성이 그 원수를 정복할 때까지 태양이 멈췄고 달이 멈추어 섰다.” (수 10:13)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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