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이름의 은총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 볼 요량으로 말씀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는데, 몇 걸음도 채 떼지 못해 강한 힘으로 나를 멈춰 세우는 표현을 만났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창5:2) 이름은 무엇인가의 전존재를 대표하는데, ‘사람’이라는 이름의 저변이 ‘복’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이다.
사람은 사람인 그 자체만으로 최고의 가치이다. 이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는 말이 어느 정도는 대변해 준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의 말을 자기네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가 처음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가 자기의 저서 <학문의 권유(学問のすすめ)>의 모두에 “흔히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라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해 썼는데 그것을 오해한 것이다.
그는 이 말을 아마 토마스 제퍼슨의 초안에 의에 이뤄진 ‘미국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말을 자기식의 사고체계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연상하는 일이 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한 말이라는데,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으로, 자칫 교만의 극치처럼 들릴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모두가 노력으로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부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 의미도 지닌다 한다.
사람은 그게 누가 됐건 자기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닮은 데가 있긴 하지만,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느 누구든 사람은 예수님처럼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는 것만으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러니 은혜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 우리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사람인 그 자체만으로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다. 금 수저, 흙 수저 같은 걸 따질 것도 없이 그렇다. 그러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도에 차이는 있다. 흙 수저로 태어났어도 노력과 능력으로 금 수저가 가진 것을 어렵게이지만 얻을 수 있는 데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게 안 되는 데도 있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입학해 놓고, ‘돈도 실력’이라며 돈 없는 ‘니네 부모를 원망’하라고 한 금 수저들이 판을 치는 한 개천에서는 용이 나기는커녕 미꾸라지로 살아가기조차 힘이 드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겪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개개인에게는 이를 고쳐 갈만한 힘이 없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와 비슷한 사람에게라도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선거에서 그 같은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억지로 짜 만든 프레임이나 가면으로 씌워진 이미지에 속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프레임과 이미지로 가려진 맨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차세대의 주역들로 하여금 기울지 않은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고, 같은 출발선에서 똑같이 스타트하는 레이스를 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금 수저와 흙 수저의 차이를 줄이는 길이다.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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