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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3 00:00
   
깨어난 대관령의 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8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165 [276]


깨어난 대관령의 봄


  새 봄이 오면 고 박흥규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낯익은 봄꽃처럼 깨어난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날은 공교롭게도 그해 고난주간 화요일이었다. 어느새 4주기가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몇몇이 어울려 그가 살던 대관령 농막을 찾아갔다. 겨우 일 년에 하루이지만, 의무감처럼 치루는 소풍의식이 되었다.


  작년에도 대관령 옛 길 근처에 있는 그의 자취를 찾아갔다. 마침 3주기를 맞아서일까, 두 아들이 아버지를 추모하며 작은 묘비를 세웠더라. 아버지의 마음을 잘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박흥규, 나무되다.” 아들들의 소망대로 그의 몸은 대관령의 흙이 되고 생명이 되어 숲을 이루고 있을 터이다.


  주인을 잃은 농막은 점점 낡아가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 지붕의 한 귀가 날라 가는 바람에 부분적인 수선이 필요하였다. 동행한 이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가볍게 몸을 날려 응급처방을 하였고, 오래 잠가 둔 빈 방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쏘여주었다. 그날 손때가 묻은 물건 몇 점을 가져왔는데 책은 이미 쥐가 파먹어 크게 상하였으나, 예스런 라디오만큼은 여전히 생생하였다. 고인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두었을 유품을 내가 보관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책 세 권 중 한 권이 ‘신성한 나무’였는데, 일찍이 고희기념으로 낸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안에 간단한 느낌을 적은 일이 있어, 아마 손 가까이에 놓고 두고두고 읽던 책이었음에 틀림없다. “인디언 영성운동의 재료인 ‘신성한 나무’를 읽다. 잃어버린 상징을 회복하는 일은 일상적인 데서 의미를 찾는 일로 그것은 일상에서 깨어 있음으로 나타나며 이런 깨달음은 자연 속에서 적응해 가는 내 노동에서 가지는 깨달음으로 본다”(103쪽).


  그는 평생 책을 참 사랑하였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책을 몇 권씩 끼고 갔다. 그는 목침만한 두께의 책을 곰삭도록 읽으면서 지식을 얻는 일에 대해 늘 경외심을 가졌다. 남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속표지에 꾹꾹 눌러 쓴 투박한 글씨체로 예의를 갖춰 헌사를 남겼다. “송병구 님. 귀국을 환영하오. 9년의 노고를 기억하며 계속 당신의 초에 불을 붙여 나가기를 바라오. 2010.10.10. 박흥규 드림.”   


  박흥규 목사님은 60세에 공상 은퇴한 후, 아예 강원도 심심산골인 대관령에서 살았다. 그는 오래 전 화전민이 터를 파묻고 떠나간 너른 빈터를 일궈서 농막을 지었다. 그리고 해마다 겨울나기가 무섭게 대관령으로 달려가 풀과 씨름하면서 농사를 짓고,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농부로 16년 동안 대관령과 어울려 살았고, 그 품에 안겼다.


  무뚝뚝한 그였지만, 뜻밖에도 유난히 외로움을 탔다. 병들고 나서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늙고 병들면 모두가 앓게 되는 인생시름일 듯하다. 대관령에서 쓴 산중일기에는 병든 몸으로 사는 삶의 괴로움과 영혼이 누리고 싶어 하는 자유로 가득하다. “홀로 지내다보니 전화 온 것 까지 기록하게 되더라. 내가 초라해지는 걸까? 정리가 안 돼.”  



  산 속에서 그는 종종 전화로 말을 걸어왔다. 먼저 서운 한 마음을 한껏 토로 한 후, 마치 얼마나 바쁘게 사느라 전화 한통 없었느냐며 알리바이라도 대라는 듯, “네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다그치곤 하였다. 나는 따지는 듯한 그의 질문이 싫었다. 꼭 시험을 치루는 수험생 같아서다.


  물론 그가 요구한 것은 날마다 후렴구처럼 반복하는 일상이나마 부자유로부터 벗어나라는 자극성 추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게 아니라도 다만 ‘박흥규 식 애정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는 심술궂은 얼굴로, 그러나 반가운 마음을 나누어 주던, 아주 무뚝뚝한 사내였다. “인마! 내가 보고 싶어 했다는 것만 알아둬.”


 
  4년 전 그가 대관령으로 아주 떠난 후 나는 토막일기장의 제목을 바꾸었다. 이전에는 ‘오늘 내가 뭘 배웠지?’였는데, 그 후로는 ‘네 사는 이야기를 들려다오’다. 여전히 그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일상 밖으로 불러낸다. “이 놈아, 너도 가는 세월이 온다. 눈 뜨고 죽어야지. 죽을 때까지 깨어있었다는 소릴 들어야지...”


  어느새 죽음의 잠에서 문득 꽃이 깨어났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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