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린머리와 헤어롤, 어떤가. 서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어울리기는커녕 아마 개밥에 도토리 같은 부조화의 극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린머리와, 3월 10일 탄핵심판결과선고 당일에 출근하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머리의 미처 떼지 못한 헤어롤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자로서 칠칠치 못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처럼 칠칠치 못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모습에 숫한 찬사가 쏟아졌다. 미처 떼어내지 못한 헤어롤 두 개가 대한민국을 위로했다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이 재판관의 퇴임을 하루 앞둔 그제 “시민들이 ‘헤어 롤’하고 헌재 앞에 모여 박수 쳐드리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 미용사가 정성을 들어 매만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린머리에는 찬사 아닌 비난이 더 많은 것 같다.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올린머리를 거의 날마다 했다는데,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처럼 한가한 자리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사고의 소식을 듣자마자 차림새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수수한 머리로 중대본에 달려가 걱정스런 얼굴로 보고를 듣고 지시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국민들이 대통령으로서 체통머리 없이 저게 모슨 꼴이냐고 비난을 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보다 더 크고 많은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에 임했다면 탄핵 같은 문제가 왜 일어났겠는가. 탄핵이 아니라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을 것이다.
나는 탄핵심판일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이 왜 서둘러 하야를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여 온 그분의 성향으로 보아 인용의 가능성이 큰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파면이 결정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제야 ‘아하!’ 했다. 기각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고 하는 남들이 다 짐작하고 있는 사실을 수명 다해 가는 형광등 같은 머리의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은 다 그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니 누구도 그분 앞에서는 아무 말을 못한다는 것도(단 한 사람은 예외지만) 간과한 탓 또한 크다.
자신의 탄핵소식에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 조금이라도 더 나라와 국민에게 해가 덜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니 대통령 아닌가. 그러나 그분은 이성을 잃은 태극기 군중 가운데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외면한 채 자기의 아픔에만 묻혀 있었다. 활로를 모색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땠든 그랬다. 나라가 망해도, 국민이야 어찌돼도 상관없다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분은 원칙을 지키고, 정직하고,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권자들이 만들어진 이미지에 속은 것이다. 그런 그분은 역시 끝까지 자기만을 생각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청와대 관저로부터 옮겨 간 삼성동 사저 앞에서 탄핵 후 처음으로, 그것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한 말인데, 헌재 판결에 대한 불복 선언이 아니고 뭐겠는가.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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