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날이 제법 푸근해져서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두꺼운 겨울옷들을 슬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끝나지 않은 3월 폭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하니 옷 정리는 천천히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봄입니다.
작은 아이가 3월 2일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본교와 분교가 함께 한 입학식에는 6명의 입학생들과 학부모, 30여명의 재학생 그리고 선생님들이 함께 했습니다. 입학식 분위기는 봄처럼 따듯했습니다. 본교에서 6명의 책가방과 실내화를 선물로 준비하여 교장선생님이 직접 한 명씩 가방을 어깨에 메어 주셨습니다. 3학년 선배들이 입학하는 동생들에게 사탕 꽃다발을 선사하며 포옹을 하고, 6학년 선배가 환영사도 했습니다.
장학금 전달식 시간에는 6명 모두에게 총동문회 장학금, 애향회장 장학금, 군청 행정동우회장 장학금 등 3종 장학금이 전달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입학만 했을 뿐인데 할아버지뻘의 선배님들이 각종 축하 장학금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입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이게 될까 걱정하여, 더 많은 입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며 학교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선배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6명의 입학생은 분교에 2명이 소속되고, 본교에 4명이 소속되었습니다. 작은아이를 제외한 5명이 모두 다문화 가정이어서 처음 진부령으로 이사를 와서 작은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한국 엄마’인 것을 서러워하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즐거운 입학식에 정신이 없었던 작은 아이는 휘파람을 불며 쑥스러움을 이겨내느라 이리저리 몸을 꼬았고 이번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이틀 학교에 다녀오고 주말이 되자 “오늘도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학생이 된 즐거움을 내보여 제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새로이 부임하신 분교의 선생님은 성함이 ‘이기도’이십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셔서 저와 남편은 다시 한 번 감사했습니다. 엄마의 수차례 지도보다 아빠의 열 번 훈계보다 훌륭한 믿음의 선생님의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엄마와 아빠는 사적인 영역이지만 선생님은 공적인 영역입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훨씬 더 엄중한 규칙과 질서가 요구된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올 해 분교는 전교생 4명으로 1학년 2명, 2학년 1명, 3학년 1명입니다. 성별은 남:여 비율이 1:3입니다. 친구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던 큰아이에게는 한 학년 아래의 여자 동생이 생겨서 만족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남매가 함께 한 학교에서 얼마나 싸우고 화해하며 지내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부딪치면서 모난 곳이 둥글둥글 유해질 것입니다.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고 나니 저도 절로 배우고 익히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3.1절을 맞아 저희 아이들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던 학생들이 밤마다 몰래 모여 태극기를 만들고 나라의 독립을 준비한 일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지금의 나이로 보자면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쳐 태극기를 흔든 것입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며, 부모 된 저와 남편이 먼저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월 24일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구매하기 위해 서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난징 대학살이라는 일본이 숨기고자 하는 과거사를 소설에 기록한 탓에 우익단체가 뭇매를 던지고 있지만 소설을 읽고자 하는 이들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죄하고 바로 잡고자 애썼기에 하루키는 이 시대의 위대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침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어느 수상 연설에서는 “ 만약 강한 벽이 있고 그 벽에 맞서는 계란이 있다면, 어느 누가 옳은지를 묻지 않고 나는 계란 편에 서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움은 지혜를 얻는 과정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고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함입니다. 배움의 과정에 있던 학생들이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한 희생에 동참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잘 배우고 익혀 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 바른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벽과 싸우느라 깨지고 뭉개진 계란의 편에 서서 신앙인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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