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내 삶의 광야에서
올해도 변함없이 사순절이 찾아왔다. 2017년 사순절은 3월 1일(수)부터 시작하여, 4월 15일(토)까지다. 3‧1 만세운동 기념일에 ‘재의 수요일’이었고, 세월호 참사 3주기에는 부활주일을 맞는다. 4월 16일이 우리 시대의 달력에서 가장 민감한 그 날로 여긴다면 마치 하나님의 특별하신 관심사처럼 느껴질 것이다. 올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과 함께 역사의 고난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고,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랑을 새기는 절기이다. 그 시작을 ‘거룩한 재’(聖灰)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자신이 먼지로 돌아갈 한시적 피조물임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숨을 지닌 인간으로서, 희망의 언약을 품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고백하는 때이기도 하다.
사순(四旬)절은 말 그대로 40일을 뜻한다. 부활주일부터 역산하여 6번의 주일을 뺀 40일이니 정확히는 46일 동안이다. 40이란 숫자의 의미는 예수님이 무덤에 머물러 계시던 40시간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고, 일 년의 십일조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40일로 정착한 것이란 말도 있다. 이동절기인 부활주일의 자리매김(주후 325년,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열린 제1차 세계공의회에서 부활대축일을 ‘춘분 이후 첫 번째 만월 다음 첫 주일’로 결정하였다)에 따라 사순절의 시작은 이르기도 하고, 또 늦어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구약과 신약에는 40일 혹은 40일 밤낮을 기록한 본문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수님 공생애의 출발과 마침은 40일씩 시간의 여백을 두고 있다. 세례 직후 금식하며 시작한 광야의 40일과 부활 후 승천까지 제자들과 누렸던 환희의 40일은 그 거룩한 여백의 기간이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의 경험은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40년의 압축처럼 보인다. 마귀에게 시험 당하신 예수님은 세 차례 모두 신명기의 말씀(8:3, 6:16, 6:13)을 인용하여 물리치셨는데,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에서 교훈을 상기시키신 것이다. 구약의 해방 사건이나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의 경우나 모두 광야의 경험이라는 통과의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40’이란 숫자는 몇 차례 더 등장한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40일 밤낮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갔고(왕상 19:8), 요나는 니느웨 성을 향해 40일이 되면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욘 3:4). 노아의 홍수기간(창 7:17)은 40일간이었고, 모세가 파견한 가나안 정탐대의 활동기간(민 13:25)도 40일이었다.
무엇보다 40일은 위기와 함께 기회를 동반하고 있다. 엘리야의 40일은 탈진한 그에게 하나님과 만남을 주선하였고, 요나의 40일 역시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유예기간이었다. 노아가 겪은 40일간의 홍수는 심판의 깊은 밤이었으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구원의 새벽이기도 하였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사순절 40일 동안 금욕이나 절제 혹은 다짐과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에 참여하려고 마음먹을 것이다. 성경이 보여준 여섯 가지 주제는 오늘의 광야에서 다시 체험하려는 주제들이 아닌가? ‘회개(요나), 연단(예수님 시험), 회복(엘리야), 준비(모세), 비전(열 두 정탐꾼), 기쁨(예수님 승천)’이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든 인생의 광야를 살아간다. 때때로 하나님의 훈련을 느끼면서 동시에 회개와 구원의 감격을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올해 사순절에 내게 필요한 40일은 무엇인가? 또 우리 민족이 견뎌야 할 사순절의 고난은 무엇일까?
그러기에 하나님의 달력은 우리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는 신비한 시간표와 같다. 텅 빈 인생의 광야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은총의 충만하심을 고대하게 마련이다. 그런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내게 주어진 특별한 40일은 믿음의 순례를 배우는 기회일 것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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