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추억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젊은 시절 영혼에 충격을 주었던 말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약 30년 전 읽었던 앤드류 머레이의 <겸손>이라는 소책자에 등장했던 마지막 구절이 내겐 그랬다. 겸손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한 후 마지막에 등장했던 저자의 기도 제안은 이런 식이었다고 기억한다. “한 달 간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기도하지 말고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기도해보라.” 흐릿한 기억 속의 말이니 아마 원문은 분명 다소 다를 것이었다. 진정한 겸손과 자기 비움을 위해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말라는 제안은 심비에 깊이 새겨졌었다. 과연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빌지 않는 것은 얼마나 큰 믿음을 전제로 한 말인가? 나를 위한 최선의 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채우실 것이란 믿음 가운데, 오로지 타인을 위해서만 기도를 올리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겸손의 본을 참되게 따르는 길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깨달음이었다.
문득 오래 전 손을 떠난 그 책의 구절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책은 여전히 출판되고 있었다. 새로운 번역본 이외에 심지어 30년 전 번역본 또한 여전히 옛 모양 그대로 출판 중이었다. 마침 집 가까이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새 번역본과 옛 번역본 한 권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의 새 책에 가까운 옛 판을 집어 들었다. 새 판의 번역과 비교해보다 결국 옛 판의 번역을 선택했던 것이다. 좋은 번역이 늘 그렇듯 옛 판은 어휘와 말투는 비록 옛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정갈하고 명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을 들추어 겸손을 위한 기도에 대한 제안을 30년 만에 직접 눈으로 다시 확인했다.
“나는 이제 여기에 모든 사람이 시험해 볼 수 있는 매우 착실한 시금석 하나를 제공하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시험하는 일이다. 일 개월 동안 세상 모든 일, 세상 이야기를 떠나라. 그대 자신에 관한 것은 무엇이건, 기도하는 일, 읽는 일, 논의하는 일을 중지하라. 전에 하여오던 생각 궁리를 끊어버리라.”
‘그대 자신에 관한 것은 무엇이건, 기도하는 일, 읽는 일, 논의하는 일을 중지하라.’ 다행히도 기억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겸손을 구하는 기도에 앞서 이러한 마음과 삶의 태도를 요청했다.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그칠 것.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한 기도조차도.
우리가 매일 드리는 기도의 제목은 곧 우리 자신의 신앙 수준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만일 그 제목이 온통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것으로만 꽉 차 있다면 그 이기적인 모습이 딱 내 신앙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 제목들에서 나를 위한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 우리의 기도와 신앙과 삶이 그리스도의 그것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고 실천하신 겸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 겸손에는 ‘나’가 설 자리가 없다. 버려야 할 것은 욕심이 아니라, 그 욕심을 지니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갈 2:20)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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