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지난 밤 잠들기 전 큰아이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제 3월이면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는데 봄방학 동안에 일기를 쓰지 않아서 첫 만남부터 혼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부지런히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기쓰기는 예나 지금이나 성가신 숙제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저 역시 매일매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일기를 쓰자니 힘겨웠습니다. “오늘은 **이와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를 주요 골격으로 하고 거기에 두 문장만 정도만 더 넣어서 비슷한 일기들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도 당일 날 쓰는 일은 많지 않고 개학을 앞두고 몰아서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 누워 밀린 일기를 쓰던 고단하던 초등학생 홍지향이 기억납니다. 그 일기 속에 자주 등장하던 소재는 안방 벽장 속의 보물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어머니의 물건들은 모두 벽장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안방 벽장에는 잘 포개진 이불과 함께 화장품 바구니와 반짇고리, 그리고 통장지갑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끔 집에서 심심해지면 어머니의 화장품 바구니를 꺼내서 분도 발라보고 립스틱으로 장난도 쳤습니다. 지금의 저 같으면 아이들을 몹시 혼내고 화를 냈을 텐데 저희 어머니는 별 말씀 없이 화장품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만 하셨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고 심심하면 가끔 벽장에서 반짇고리를 꺼내서 바느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입지 않는 낡은 옷을 잘라서 누덕누덕 기워서 손에 맞는 장갑처럼 생긴 손걸레를 만들면서 저 스스로 바느질 솜씨가 꽤 좋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의 매일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셨습니다. 구멍이 난 양말을 꿰매고 단추를 달고 물려 입어 낡은 바지나 티셔츠에 둥근 천을 덧대서 꿰매 주시곤 했습니다.
연중 가장 큰 바느질 행사는 이불 홑청을 새롭게 시치는 때였습니다. 홑청을 뜯어서 세탁을 한 후 찹쌀 풀을 먹이고 다듬이에서 두드린 후 쫙 펴서 말리고는 안방에 펼치고 무거운 이불을 위에 얹었습니다. 그리고 시침핀으로 자리를 잡고는 어머니는 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저는 아래에서부터 왼쪽으로 홑청을 시치기 시작했습니다. 목화솜 이불은 무겁기도 하거니와 긴 바늘을 넣었다 빼기가 쉽지 않아서 골무를 끼고 작업을 해도 손을 찔리기가 일수였습니다. 몇 채의 이불을 모두 꿰매고 나면 겨울을 날 준비가 완료되고 겨우내 까슬까슬한 풀 먹인 무거운 이불이 세찬 웃바람도 막아주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결혼을 준비하며 외할머니와 목화솜을 따고 터서 만든 솜이불은 몇 번의 타면을 거쳐 건재하게 친정집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집이 예전보다 따듯하고 가벼운 이불에 익숙해져 솜이불을 덮고 누우면 답답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을 먹이고 기워진 이불을 보면 옛 추억이 아른아른합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하던 그 바느질 덕에 가정수업 시간에 뜨개질, 수놓기, 한복 만들기 등을 잘 할 수 있었나 봅니다.
“엄마 양말에 구멍 났어요. 쫑쫑 꼬매 주세요.” 하고 작은아이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이제는 구멍이 난 양말이나 바지를 잘 기워서 입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관이 뚜렷한 작은 아이는 마음에 드는 편한 옷이 있으면 남들 눈은 신경 쓰지 않고 구멍이 나면 기워서 그냥 입고 다니고 싶어 합니다. 제대로 된 반짇고리도 없지만 큰아이 역시 심심하면 옷을 잘라 바느질을 합니다. 한 땀 한 땀 세대를 따라서 바느질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큰언니가 만들어 준 가방들을 들고 다닙니다.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다른 퀼트 혹은 손바느질 가방과 지갑은 때가 타도 세탁이 가능해서 편안하고 좋습니다. 날마다 재봉틀 앞에서 옷을 만들고 손바느질 가방을 만드는 언니의 덕을 제가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해야 하는 바느질은 마치 하루하루 일기쓰기와 닮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똑같은 바느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근래 여유가 없는 저 자신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오늘 아침에는 바느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여지는 천도 땀을 뜨는 손도 바늘에 찔려 아프다고 조급하게 뜨면 모양이 어그러지거나 땀이 예쁘지 않습니다. 찔리거나 찌르는 일이 있어도 이것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한 땀 한 땀 떠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걸음마다 삶을 내어 맡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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