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자
이어령 교수는 자신을 딱정벌레에 비유하며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감춰진 날개를 펴는 것은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50여년을 그 껍데기 속에 날개를 감추고 살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산문과 시를 이야기하며 나온 말이다. 산문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딱정벌레가 두꺼운 껍데기를 들추고 숨어있던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는 것.
2008년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펴내면서 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 원로 지식인으로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주목하는 것은 대표적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재미 목사였던 딸 민아씨가 암에 걸려서까지 아버지를 전도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민아씨의 끈질긴 기도와 전도 때문에 교회 문안에 들어선 무신론자 지식인 이어령은 세례교인이 되었다. 그가 세례 받고 나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한 내용은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로 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는 딱정벌레가 날개를 펴고 알몸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본 게 있고 들은 게 있다고 고백한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의 내용 중 일부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부끄러운 알몸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그 멋진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시집 내기를 망설였던 이어령 교수는 이제 기어이 알몸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믿음과 시작 활동은 이렇듯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장미를 찍어도 까맣게 나오고/ 갠 하늘도 늘 흐린 흑백사진/ 평생 웃은 적이 없다는 뉴턴처럼/ 입 다문 내 얼굴의 흑백사진/ 지금이라면 치즈라고 미소를 지었을 텐데.”
옛날의 그가 살아온 긴 세월은 그저 흑백사진이다. 그러나 이제는 미소를 지을 만한 세상이 된 것이다. 굳이 믿음으로 해석하면 말이다. 현란한 산문 속에서는 민낯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가 이제 시를 통해 알몸을 드러낸다.
그의 시집을 읽으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새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감추려고 하면 감춰지는 걸까.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대중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이거나 그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다.
성경은 말한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춰진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맞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추려고 하는 게 헛수고다. 차라리 민낯을, 알몸을 드러내는 게 낫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수정하고, 보수하고, 다시 만들어 주신다. 이게 바로 죄의 고백이요 용서의 법칙이다. 성도들이여!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게 있는가. 이제 껍데기를 벗자.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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