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엽서
한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밤 외출하고 돌아오던 큰아이가 “우와 오늘은 별이 많네요. 내일 날씨가 좋을 것 같아요.”하고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정월대보름을 맞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과 촘촘히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깜깜한 시골을 밝게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어둠이 짙으면 빛이 선명하게 눈에 띕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을에 떨어진 뒷산의 낙엽들이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힘을 잃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점점 발효가 되어 날이 따듯해지면 새로이 돋아날 풀들의 좋은 거름이 되어 줄 것입니다. 뒤집어 주는 사람도 없고 땅을 고르는 이도 없지만 걱정하는 이도 없습니다. 가을 낙엽 덕분에 땅은 비옥하고 작년에 떨어진 씨앗들 덕분에 산은 여전히 무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활동과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재미있었던 것은 늦가을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뒷산에 올라가 참나무 낙엽을 가득 담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언니들과 마을 아이들과 함께 검은 봉지 하나씩을 들고 산에 올라가 바닥에 지천으로 널린 잎을 손으로 주워 담았습니다. 그리고 입구를 잘 봉한 후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면 과제는 완수였습니다.
그러면 그 날은 학교 뒷마당에 커다란 구덩이가 두 개 파여 있고, 낙엽을 모아온 아이들이 학년별로 안내방송에 따라서 봉지를 들고 학교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일렬로 줄을 서서 봉지를 열고 구덩이에 자신이 가져온 낙엽을 쏟아 부었습니다. 마지막 1학년까지 낙엽을 붓고 나면 선생님들이 여러 번 발로 밟으면서 낙엽을 꾹꾹 눌러주고는 그 위에 비닐을 깔고 흙을 덮어서 봉긋한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산은 신기하게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봄에 학교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사용할 퇴비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한 번도 덮었던 구덩이의 비닐을 걷어서 퇴비를 꺼내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같은 일을 했던 것으로 보아 그 용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오밀조밀하던 학교 앞 뒤의 화단들은 전교생의 고사리 손으로 모아 온 낙엽들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반들반들 윤기를 띄고 잘 자랐나봅니다.
최근에 자활센터에서 어촌에서 많이 버려지는 생선뼈를 모아서 액체비료를 만드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우스를 만들고 생선뼈 발효를 위한 설비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저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였던 생선뼈가 잘 발효되면 영양이 가득한 천연 액체 비료가 될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지천에 널려있는 자연의 부산물들을 시간을 두고 발효시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 이런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도시 미관을 위해서 쓸어야 할 낙엽이고, 떨어지는 낙엽, 물에 젖은 낙엽 등 낙엽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쓸쓸함, 생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던 찬란한 시절에도 광합성을 하며 영양분을 생산하던 낙엽은 떨어진 후에도 거름이 되어 흙을 기름지게 하고 생명을 살려냅니다. 천천히 녹아내린 낙엽은 그 몸을 바쳐 새싹들을 기르고 땅 속 생명체들의 먹이가 되어 줍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엽서>
삶이 무르익어 이제는 저물어가는 황혼의 인생이 바로 사랑의 정점이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이 바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떨어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낮아지거든 ‘아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구나.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되었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이미 떨어져 형체가 사라져가는 낙엽의 지혜를 간직하고 사랑을 깨달아 가는 한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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