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가 있는가
어느 날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방문하셨다. 당연히 귀한 손님이 오시는 것이니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마르다는 맏이라 손님 접대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더욱 분주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손님 발치에 앉아 손님과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마르다가 보기에 마리아는 쓸데없이 손님과 노닥거리느라 중요한 일손을 돕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속이 터진 마르다가 참다못해 예수께 요청한다. 마리아를 붙잡고 있지 말고 내보내 자신을 도우라고 하라고. 하지만 손님이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충격적이다. 마르다가 많은 일로 근심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시는 게 아닌가.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0:42)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마르다를 핀잔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마리아를 칭찬하고 있다. ‘좋은 한 가지’를 붙잡았다며 빼앗기지 말라고 하신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지만 쭉정이만 가졌다는 뜻이고, 마리아는 한 가지를 붙잡았는데 가장 중요한 걸 붙잡았다는 말이다.
한 가지, 하나, 그렇다. 그 하나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한 분 예수, 그를 모범으로 삼는 것이다. 틱낫한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한 송이의 꽃이 꿈을 일깨울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의 시작일 수 있고, 한 마리 새가 봄을 알릴 수 있다.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한 줄기 햇살이 땅을 비출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다.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한 사람의 가슴이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하나’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우리는 내남직 참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여 생각도 많고 할 일도 많다. 하루가 100시간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현대인은 멀티태스킹의 시대를 잘도 견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즐긴다. 그러면서 그걸 실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참된 삶이나 행복한 삶은 그리 복잡하거나 여러 일을 능력 있게 해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차라리 ‘나 하나’를 잘 아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 것 다 겨졌어도 자신을 가지지 못하면 허탕이다. 하나, 한 가지, 한 인간, 한 가치, 한 예수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세상을 다 가진 자다.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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