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공화국
‘세상 탓하고 시스템 탓하는 것 다 좋은데, 그렇게 남 탓해봐야 세상 바뀌는 것 아무것도 없어//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TV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중에서)
지난 몇 달간이 마치 몇 년이나 흐른 듯 느껴진다. 충격적인 조국뉴스가 연이은 탓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는 또 무엇이 터졌나?’ 먼저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최순실이라는 천박한 여자와 호스트바 출신 한 사내의 애증의 사연들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자기폭로 식으로 전개되더니 결국 대통령 탄핵심판에 이르는 엄청난 국가적 쓰나미를 몰고 왔고 이의 진행을 바라보면서 한반도 남쪽의 백성들은(해외의 백성들도 또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재벌도 고관대작들도 납작 엎드렸던 최순실의 위세야 옛날부터 왕을 등에 업은 내시에게 빌붙어 부귀영화를 탐하던 간신배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백성들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 쳐도,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사회지도층들이 쏟아낸 거짓말 앞에선 할 말을 잃었다.
처음 언론을 통해 대통령 연설문들이 최에게 유출되고 수정도 되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서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을 하기에 백성들은 ‘청와대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하고 믿었었다. 또한 한 야당 국회의원이 핸드폰을 들고 나와 ‘대통령이 대포폰을 쓴다’고 의혹을 제기했을 때에도 청와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기에 백성들은 ‘조폭들이나 하는 짓을 대통령이 했을 리가 없지. 얼마 전 이 정부에선 대포폰을 근절해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선언도 했었는데.’ 하며 믿었었다. 그런데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졌다. 심지어 비서관이었다는 자로부터 ‘대통령이 도청을 의식해 대포폰을 썼다’는 변명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또한 최고 지성인이라는 명문대학의 교수들이 국회에 나와 눈을 똑바로 뜨고 ‘안 그랬습니다’ ‘모릅니다’ 하다가 며칠내 거짓말이 들통나 줄줄이 수갑 차는 것을 보면서는 과연 미네르바의 부엉이 신화에서 파생된 ‘비겁함은 지식인의 존재적 본질’라는 지적을 실감하기도 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잘 쓰는 말에서 그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정의, 진실을 자주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삶이 불의하고 거짓된 면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화합, 단결을 말하는 사람일수록 툭하면 ‘판’을 깨버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돈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돈을 밝히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조금 아는 한 교인은 ‘신앙인은 십자가 앞에서 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만날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준다며 불평을 한다.
다소 부정적으로 흐르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평소 잘 쓰는 말을 스스로 살펴보고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약점, 단점을 고쳐나가면 좋겠다는 제언을 하고 싶어서이다. 솔직히 나의 경우엔 글을 통해 가정사 얘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아픈 실패의 경험이 마음에 맺혀있어 반성의 의미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김수영 시인으로 글을 마무리하자. 시인은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라는 제목의 시에서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이 죄의 여운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금방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자유가 온다 해도.’라고 썼다. 저 1960년대의 참여 시인이자 진정한 자유의 시인으로 존경받는 김수영은 민주주의를 위한 소시민들의 각성과 역할을 자주 역설했다. 시인이 뿌린 그 위대한 씨앗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착한 백성들이 즐겨보는 TV 드라마의 대사로도 녹아들었는가 하면 손에 손에 들린 ‘촛불’로도 승화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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