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방문하신 하나님
해마다 1월 6일, 주현일은 온 그리스도교 교회가 함께 지키는 축제일이다. 이날부터 주현절(Epiphany)이 시작한다. 주현 절기는 사순절이 시작하는 참회의 수요일 전날까지 4-9주간동안 이어진다. ‘주현’(主顯)으로 옮긴 라틴어 ‘에피파니’는 ‘epi’(upon)와 ‘phaino’(show)가 합쳐진 것이다. 말 그대로 나타남(appearance) 또는 현현(顯現)이라는 의미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주현일은 동방박사가 방문한 날이다. 성탄 12일 후,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찾아왔다. 유대인도 모르는 ‘유대인의 왕’을 경배한 동방박사들에 대한 뒷이야기가 성탄절마다 반복해 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취급할 필요는 없다. 고대 세계에서 이런 일은 흔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하였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의 신분을 페르시아 출신 매기(Magi)라고 하였다. 동방에서 온 그들 덕분에 “서양 사람들은 종교를 연구(Study)하기를 좋아하고, 동양 사람들은 종교를 살기(Live)를 더 좋아 한다”는 말을 더 실감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길을 떠났고, 마침내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다.
메시야를 처음 경배한 이방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따스한 시선은 세월이 갈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동방박사의 유골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소피아 대성당에 모셔졌다. 제1차 십자군 전쟁 때에는 밀라노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164년 황제 빠삐롯사가 밀라노를 정복한 후 라인강변 쾰른으로 안치되었다. 동방박사를 가리켜 ‘쾰른의 세 왕’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이라는 위대한 드라마의 단역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경배는 그리스도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거듭 찬양 받는다. 네 번째 동방박사 알타반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어떤 전설에는 동방박사가 본래 열둘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에 따르면 당시 동방박사들은 구만리 먼 길을 찾아간 고조선 유민이라고 한다. 상상력이 참 크고도 넓다. 새로운 시대의 등불은 언제나 꿈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주현절은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계시(啓示)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이해하였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세상을 방문하셨다는 소식이다.
‘주현’은 마치 신년에 왕이 지방을 순시하듯,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따듯한 심방을 맞이하는 날인 것이다. 이날 우리는 나사렛 예수를 통해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영접한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주현일을 진정한 성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주현일 다음 날인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다.
성경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고전 1:21)을 자기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러기에 주현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는지를 살펴보는 때이다. 바로 내 삶의 가장 작은 영역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아는 풍성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이 나날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절기인 것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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