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다림 초’를 밝히며 대림절이 깊어가고 있다. 대림절은 일 년 중 어둠이 가장 깊은 동짓달에 위치한다. 한 해의 끝자락, 어둠과 빛의 갈림길인 동지가 되면서 성탄은 차차 밝아 온다. 그래서 대림절은 빛의 절기라고 부를 만 하다. 특히 북구(北歐)에 가까이 위치한 독일의 경우 빛의 문화가 일찍 자리 잡았는데, 겨울철에는 늦은 오후만 돼도 사위가 어둑어둑하기 때문이다. 어두움에 익숙해지기보다 빛에 대한 간절함이 웃자란 배경이다.
빛의 문화 중 대표적인 것은 해마다 11월 11일, 겨울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마틴의 행진’(Martin Zug)이란 축제이다. 그날 주인공인 성(聖) 마틴은 주후 317년 지금의 헝가리 땅인 자바리아에서 태어났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로마 신화에서 전쟁의 신인 마르스를 따서 마르티누스라고 붙여주었다. 마틴은 아버지의 강요로 25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로마의 군인이 되었지만, 그의 이름에 담긴 숙명과 달리 군인의 길은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전해져 내려오는 성 마틴의 선행은 대단히 유명한 이야기다. 추운 겨울 밤, 마틴은 한 거지를 위해 자신의 겉옷인 군복을 반으로 잘라 덮어주었는데, 그날 밤, 마틴은 자신의 반쪽 겉옷을 덮고 계신 예수님을 목격한다. 그의 삶이 구도자로서 길을 걷게 된 것은 자연스런 소명의 결과였다.
마틴의 행진은 초등학교 4학년 이하의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축제이다. 동네마다 초등학교나 유치원 마당에 모인 아이들은 손에 저마다 장식한 등불을 들고 행진을 시작한다. 자연스레 “쌍 마틴, 쌍 마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동네를 한 바퀴 돌 동안 계속 반복해 부른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행렬 뒤를 따라 걷고, 아기가 탄 유모차에도 작은 등불이 걸려있다. 아이들은 따듯한 브레쩰 빵을 선물로 받으며 행진을 즐긴다. 도시든 시골이든 단 한 지역도, 단 한 명의 어린이도 마틴의 행진에서 예외는 없을 듯하다.
성 마틴은 독일 어린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성인이다. 어린 시절 내내 아이들은 등불과 친숙해 지면서, 자연스레 마틴의 선행을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마틴은 청빈과 겸손 그리고 구제를 실천하며 평생 수도자로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종교교과서는 “우리는 엘리자베드처럼 나누고, 마틴처럼 돕습니다”라고 가르친다. 4세기 사람 마틴의 등불은 수많은 작은 등불들을 이끌어 내면서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성인은 빛을 예비한 사람들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은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때이지만, 그 날은 어둠을 가르고 빛의 길을 낸 날이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사람들이 기다렸던 메시야는 빛으로 오신 주님이시다. 어둠의 세력은 빛을 가두려고 하였지만, 결코 어둠 속에 진리를 가두어 둘 수 없다. 어둠이 빛을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전국이 빛의 함성으로 빼곡하다. 어린 시절부터 등불행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유모차에 탄 아기들도,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도, 세대와 지역 그리고 이념을 초월한 남녀노소 모두는 저마다 촛불을 들고 효자삼거리로 향하고 있다. 빛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슬픈 촛불, 세월호 304명의 영혼과 같은 여린 등불, 그리고 청와대를 향한 분노의 횃불들은 점점 거세게 타올라 당장 세상을 바꿀 기세다. 2017년을 앞두고 올해 대림절은 그야말로 빛의 환희로, 등불의 축제로 민주주의의 광장을 훤히 밝히고 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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