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낙화>, 이형기
문득 이형기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계절의 순환이 자연스럽고, 만남과 이별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삶에서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는 아름답습니다. 떨어지는 꽃이 있기에 무성한 녹음과 열매가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가장 화려한 시절에 ‘가야한다’는 것을 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한 사람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엄청 열심히 일했는데 작년부터 몸이 너무 아픈 거야. 실장이 되고 이제 일 하기도 수월하고 이 나이에 어디 더 좋은데 가지도 못할 것 같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사직서를 냈는데 좀 쉬고 나니 또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게 됐어. 지난 일 년 쉬면서 제일 많이 성숙한 것 같아. 인생 공부 제대로 했지 ”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놓아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미련 없이 놓았을 때 새로운 기회가 왔고 내면의 성숙을 맛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겪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놓고 알 수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때가 되었는데 놓지 못함으로 인해 삶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원숭이 사냥꾼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서 줄을 묶은 유리병 속에 바나나를 넣어둡니다. 원숭이가 와서 유리병에 손을 넣고 바나나를 잡습니다. 그리고 바나나를 꺼내기 위해 병을 잡고 흔듭니다. 사냥꾼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 유리병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원숭이는 사냥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서도 바나나를 놓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가까이 오는 사냥꾼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서 바나나를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냥꾼은 원숭이를 잡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집착이라고 부릅니다.
바나나를 먹고 싶은 원숭이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만 바나나를 놓고 도망가야 할 때를 놓친 원숭이는 자유를 잃고 맙니다. 가야 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았던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권위를 버리고 회개해야 할 때를 알았고, 세례요한은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으며 ,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때를 아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말기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키고 순교할 수 있도록 삶의 마지막 때를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머지않아 열매 맺는 무성한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죽은 청춘’이 있었기에 지금의 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때를 알고 손에 움켜 쥔 것을 놓을 줄 아는 지혜가 선조들의 유산으로 우리 속에 살아 있습니다. 가야할 때를 알지 못하고 권위를 내세우고 힘을 내세운다면 결실은 없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결실이 되었든지 집단의 결실이 되었든지 간에 말입니다.
가야할 때를 아는 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힘입어 아브라함처럼 가야할 때가 되면 용감하게 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 놓아야 할 것을 놓고 열매 맺는 가을을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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