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흑(黑) 역사
오랜만에 국론이 통일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덕분이다. 기실 ‘박순실-최근혜 게이트’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국정‘농단’(壟斷)이란 사생아는 국민적 분노를 함께 낳았다. 흔히 촛불정국이라지만 흔들리는 촛불로 태울 수 없을 만큼 국민의 가슴은 붉은 숯덩이로 이글거리고 있다. 상식을 에누리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참 불행한 일이다.
누구는 지난 50년 동안 누적되고, 쌓여온 ‘반신반인’ 박정희 우상의 두터운 퇴적물이 국민적 분노의 파도에 휩쓸려 이젠 밑바닥이 보인다고 희망 섞인 덕담을 한다. 다른 이는 광화문 광장에 나선 인파가 1987년 6월 항쟁을 넘어섰다고 놀라워한다. 광장의 시민들은 마치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듯 탄식과 환호를 반복한다. 해방 직후 거리로 몰려든 함성이 이 만만 했을까 싶을 정도로 광화문 광장에 일렁이는 파고는 권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늘 ‘복음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워 우파권력의 기득권을 찬양하던 이들도 분노에 동참하고 있다. 그 반란이 상상이상이다. NCC는 물론 심지어 한기총과 한교연 마저 대통령을 향해 돌을 던지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들 중에는 강단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투표를 종용하던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주요교단들이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섰다. 성명서의 내용은 ‘회개에서 퇴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지만 한 군데로 화살이 쏠리는 현상은 극히 이례적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청와대는 서둘러 사과성명을 낸 후 ‘이른바’ 각 종단 지도자들과 만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비난의 쓰나미를 피하고자 했다. 가톨릭과 불교의 경우 비교적 쓴 소리를 했으나, 개신교는 전혀 달랐다. 평생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진 두 목사는 따끔한 질책이나 참회 촉구는커녕 대통령을 ‘고레스’로 추켜세워 논란을 키웠다. 그 농단(弄丹)이 당장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았을지 모르나, 결국 교회 안팎의 비난을 벌었다. 물론 그들의 그림자를 보면 예상할 만한 일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 목회자가 전하는 말이다. 독실한 장로 한 분이 이렇게 탄식하더란다. 늘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애국적 디아스포라인 그는 “차라리 좌파의 장난이길 바래요”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그간 행태를 보면 여차하면 최순실조차 좌파,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고픈 심증이 결코 무리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박정희-박근혜’는 향수이상의 종교였다. 추억에서 사라져 악몽이 된 현실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되었다.
물론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국정농단의 장본인들을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조격인 최태민이 ‘목사’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귀에 거슬리는 호칭 때문에 이미 교계에서는 여러 차례 최태민은 ‘진짜’ 목사가 아니라 ‘사이비’이며, 그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측은 교세가 미미하고, 이미 그 교단에서도 쫓겨난 인물이라고 강변했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어떤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태민은 ‘목사’란 타이틀로 권력에 기생했기 때문이다.
이단연구자 탁명환 소장의 감별에 따르면 본래 최태민은 원자경이란 무속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5년 4월, 최태민 ‘목사’가 구국선교회와 십자군을 조직할 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그의 휘하에서 보직을 맡았고, 어쭙잖은 군사훈련도 받았다고 한다. 권력지향적인 목사들의 부나비적 행태를 잘 알고 있는 교계가 이제 와서 ‘목사’ 최태민을 비난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노릇이다. 당시 탁 소장은 이렇게 탄식한 바 있다. “진짜 목사가 가짜 목사를 비호하고 두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짜 목사’ 최태민 주위에는 유신 치하에서 권력에 편승하려는 ‘진짜 목사’들도 적잖이 있었다.”
다만 교계가 한 목소리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최태민과 한통속으로 ‘목사’ 취급을 받게 될까봐 우려하는 점도 있을 법하다. 최순실의 행태를 가리켜 ‘무당 사주정치’라고 하자 보다 못한 한국무신교총연합회에서 ‘무당’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닌가? 개신교가 모조리 이반한 배경에는 우상숭배의 독이 이번 사건의 본질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번 사건에는 이미 숱한 징조와 표징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검증에 실패한 까닭은 사안마다 이념과 지역 등 대립과 갈등의 시각으로 편 가르기를 일삼고 진실에 눈 감았던 우리 사회의 맹점(盲點)이란 고질병 탓이다. 탈식민주의, 독재청산, 민주주의의 확대를 외면한 지금, 우리 사회가 치루어야 할 대가는 참 크고 무섭다. 그리고 예언자의 감수성을 잃어버린 교회는 얼마나 더 많이 시민사회로부터 외면당할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어느 종편은 앵커 브리핑에서 개신교를 향해 이렇게 충고하였다. “속속 드러나는 개신교의 흑(黑)역사... 안타깝게도 회개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군요.” 우리 사회가 해방 후 맞은 가장 큰 정치사회적 위기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현대사의 진실에서 일탈한 교회 역시 그런 변화와 개혁의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송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