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훈련을 하느라 지지난 주 예배를 못 드린 청년들이 지난 주일에는 밝은 얼굴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가장 반가운 사람은 5살, 7살 된 유치원생들입니다. 군인들과 함께 딱지치기도 하고 안아달라고 하기도 하며 장난을 칩니다. 싫은 기색 없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청년들도 부대 안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연령대의 교인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갑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 북돋우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주중에 하루씩 고성군에서 파견해 주는 책을 읽어주시는 구연동화 선생님이 마을에 올라오십니다. 지난주에 오셔서 토요일에 청소년 축제가 있으니 한 번 와보라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토요일에 시간을 낸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에 있는 청소년문화센터로 가보았습니다. 센터 앞 주차장을 막아 행사 장소를 꾸미고 고성군 내에 있는 고등학교 동아리와 4개의 청소년문화센터 동아리들이 각자 부스를 마련하고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고성군수의 축사를 시작으로 행사를 준비한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여자들은 행사에 참여하면 도장을 찍어주는 빙고게임 종이를 하나씩 나눠 받은 후 도너츠, 떡고치, 오뎅, 팝콘 등을 먹거나 다양한 만들기, 혹은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빙고를 완성해가는 형식으로 행사는 진행되었습니다. 부스를 운영하는 것도,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도, 먹거리를 만들고 나누어 주는 것도 모두 청소년들이 했습니다. 공연을 신청한 학생들의 춤과 노래를 들으면서 더 신이 난 사람들은 바로 행사장을 찾은 문화센터나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었습니다. 저와 남편도 신이 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왜였을까요? 요즈음 노래는 도통 모르는 저이지만 이번 행사에서 나오는 노래와 춤들은 모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청소년들처럼 제가 10대였을 때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왔습니다. 행사의 주제는 “ 토요일! 토요일은 복고다!”였습니다. 80년대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청바지와 청자켓을 입고 앞가르마를 한 남학생들과 갈래머리를 땋은 여학생들이 지나다녔습니다. 누가 가장 복고풍의 스타일을 하고 왔는지 콘테스트를 하기도 하고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젝스키스, 신해철, 박남정 등 옛 가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순간 함께 모여서 춤을 춘 플래시몹도 볼 만 했습니다.
도장을 받아가며 이것저것 먹는 재미로 신이 난 작은아이와 각종 만들기와 게임에 재미를 느낀 큰아이,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자치활동에 신이난 청소년들을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저와 남편은 그 어떤 축제보다 즐거운 축제였다며 좋아했습니다.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고 즐기는 청소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저희 아이들도 자라서 저렇게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청소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한창 혈기 왕성하게 뛰어놀고 친구들과의 정을 쌓아나가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나이에 객관식 단답형 삶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기’가 넘쳐야 마땅하지만 피로와 불안이 가중되는 입시제도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고 우리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지난 토요일 복고의 열기로 행복했던 저는 청소년들의 ‘생기’에 푹 빠졌었습니다. ‘생기’는 이처럼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자 비로소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그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는 티 없는 생기야 말로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른들에게서도 이런 생기를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서 누구나 그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행복해지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도 조화는 결코 생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신앙이라 해도 가짜 믿음은 생기가 없습니다. 오늘 저는 생기가 있는 사람인지 되돌아봅니다. 조화처럼 화려하게 자리를 지키는 생기 없는 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반성은 찔림과 아픔을 주지만,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기를 발하며 오늘 하루 저와 제 주변의 이웃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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