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보석들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종교개혁이 태동되었던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생애와 신앙의 뿌리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못 박아 걸었다는 성(城)교회 내부에는 현재 루터와 멜란히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종교개혁의 영웅 루터는 그의 생애 동안 단 한 순간도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주위에는 그를 도와준 실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제후들과 농부들, 신학적 동지였던 멜란히톤, 케테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의 아내 카타리나...
출교 후 영주와 제후들은 생존권을 포함한 모든 법적인 권리가 박탈된 그를 보호해주었다. 농부들은 나중엔 비록 그와 애증관계에 있게 되지만 종교개혁 처음에는 그를 따르고 지지함으로써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멜란히톤은 뛰어난 학자로서 비텐베르크의 교수로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루터의 종교개혁의 이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도 전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르트부르크에 피신해있던 루터에게 신약성경번역을 재촉했던 이도 바로 그였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루터 박물관에는 루터 부부의 그림 아래 다음과 같은 루터의 말이 적혀 있다. “나는 나의 케테를 프랑스와도, 베니스와도 바꾸지 않으리라.” 수녀였던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루터가 카타리나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카타리나가 루터와 결혼했다’고 말한다. 교육받은 부유한 가정 출신의 여성이었던 카타리나는 결혼 후보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때 먼저 택했던 사람이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루터를 택했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들로부터도 인정받았던 여인이었다. 유일하게 맥주 제조를 할 수 있었던 여성이었고, 루터가 제후로부터 선물 받았던 수도원 건물을 거처 겸 학생들을 데리고 사는 집으로 꾸몄을 때도 모든 생계를 문제없이 꾸려나갔던 여인이었다. 그녀 덕분에 말년의 루터는 경제적으로도 불편함 없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었다.
루터는 기막힌 우연과도 같은 여러 정황과 사람들을 누렸다.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빠졌더라면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루터는 없었으리라. 그는 실로 인복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루터 박물관의 한 벽은 1520년 종교개혁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루터의 말을 적어 놓았다. “다른 이들이 나의 짐을 짊어지고 나르고 있다. 그들의 힘이 나의 힘이다.” 루터는 고백한다. 내 옆에 있는 그들의 힘이 나의 힘이다.
바울은 은사를 얘기하며 다양한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말했다. 각 사람의 은사가 다 다르다는 말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이질적인 지체들이라는 말은 결국 혼자서는 신앙생활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지체 가운데는 맹장 같이 쓸모없어 보이는 지체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보일지라도 쓸모없는 지체는 없다. 맹장은 면역에 기여하며 대장과 소장을 연결하여 음식의 역류를 방지한다고 한다. 지금 내 옆의 사람, 그는 내 발목을 잡고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기분만 상하게 하며, 힘들게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은 그러나 이상한 방식으로 내 삶에 귀한 사람일 수도 있다. 루터에게는 많은 대적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없었더라면?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루터 또한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영웅은 언제나 위대한 적을 필요로 한다. 방해와 불편함, 적대감이라는 옷을 입고 내 옆에 있는 사람, 심지어 그조차 ‘나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곁에 두신 사람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보석들인 셈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이 보석들을 꿰어야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제 아무리 보석(寶石), 즉, 보배로운 돌이라도 해도 몰라보면 그저 무익한 돌멩이일 뿐이다. 믿어보자. 하나님께서 그를 내 곁에 두셨다면 그는 보석임에 틀림없다. 그의 힘은 나의 힘이다.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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