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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16-10-28 02:08
   
쌀을 위한 기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2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51 [242]


쌀을 위한 기도


  올해도 어김없이 김포 문수산성교회 임 권사님이 햅쌀을 보내주셨다. 브랜드 상표도 붙어 있지 않은 푸대 자루는 오히려 가장 소중한 브랜드 제품처럼 느껴졌다. 하루 지나 고맙다는 전화를 드렸더니, 해마다 반복하는 레파토리처럼 “너무 적게 보내드려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나 말고도 후임 목사에게도 똑같이 쌀을 보내는 그 정성에서 진한 의리가 느껴온다.


  임 권사님은 31년 전, 교회를 개척한 후 처음 찾아온 중년남성 신자였다. 먼저 교회에 다니는 아내를 몹시 구박하던 그이기에 몹시 낯부끄러워하면서 예배당에 발을 들여놓았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온 그는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아 무언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성탄절에 무엇이 필요하냐며 호의를 보이기에, 그냥 구유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1985년 겨울, 그해 만든 구유는 비좁은 ‘ㄱ’자 예배당의 십자가 아래 놓였다. 두고두고 보니 복음은 ‘구유에서 십자가까지’구나 싶었다.   


  그는 한번 발을 들여 놓더니 지금껏 그 걸음이 한결같았다. 동네 말로 ‘찰짜신자’가 된 것이다. 이듬해엔가 주일저녁에 기도 순서를 맡았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강대상 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으레 ‘지도편달’(指導鞭撻)은 시골면장이나 군수가 애써 겸양을 떨며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말버릇이 아니던가? 꾸준히 하나님의 지도편달을 받던 그는 교회에서는 집사를 거쳐 권사로, 마을에서는 새마을지도자와 이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임 권사님이 좋은 신앙인인 까닭은 그의 기도에서 드러났다. 그는 대표기도 할 때마다 세상의 온갖 사연을 자신의 기도 품에 끌어안았다. 교회와 마을의 대소사는 물론 농사일의 고단함, 시국의 현안문제들,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빠짐없는 중요한 간구였다. 얼마나 기도내용이 시사적이고, 관계적인지 나는 그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앵커맨’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자신보다는 남을,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민족을, 더 나아가 온갖 세상허물을 다 하나님께 아뢰기 때문이었다.


  그 기도에서 쌀 문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교회 앞 포내(浦內) 벌은 23만 평의 넓은 들판으로 그곳에서 질 좋은 김포 쌀이 생산되었다. 강화도 북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면서 탐스럽게 자라나 누렇게 익은 가을 들녘은 늘 포내리 사람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쌀은 더 이상 농부들의 자랑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도 저곡가 정책 때문에 해마다 정부와 수매가 전쟁을 치뤘는데, 그 후에는 우루과이라운드를 시작으로 쌀 수입 개방 압력이 점점 거세졌다.


  게다가 쌀 소비는 점점 줄어들어 1970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났다. 국민 한 사람이 1970년에는 1년 동안 136.4kg의 쌀을 먹었는데, 현재는 겨우 62.9kg에 그친다. 하루에 밥 두 공기도 채 안 먹는데, 이를 쌀값으로 따지면 겨우 345원어치라고 한다. 같은 기간 육류소비량이 9배 늘어 1년 동안 47.6kg를 먹는다니 쌀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쌀이 남아돌아 국내재고량이 135만 톤을 넘어섰고, 이를 관리하는 데만 10만 톤 당 316억이 든다니 갈수록 쌀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임 권사님은 일찍이 자신의 기도를 통해 대안을 제시해 왔다. 남아도는 쌀을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어 나누어 먹자는 내용이었다. 남다른 통일신념 때문이 아니다. 연속되는 풍년에 쌀 수매 값은 제자리걸음이고, 해마다 쌓여가는 재고미가 쌀 생산농가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평생 쌀농사를 짓지만 농기구 구입비와 비료 값도 못 갚아 고스란히 쌓여가는 까닭이다. 그가 한숨과 함께 쌀을 위한 절절한 간구에 두루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농부들은 ‘밥 심(힘)’이 먹히지 않는 시대를 사는 것이 고달프다. 다이어트가 미덕인 사회에서 쌀과 같은 탄수화물은 ‘이밥’의 고마움이 아닌 이젠 찬밥 취급을 받는다. 그 핑계로 농정(農政)은 쌀 수매가를 후려치고, 정부가 약속한 쌀값을 촉구하던 농부를 향해 물대포를 쏴댔다. 오죽하면 백남기 농부가 서울까지 올라와 아스팔트 위에서 죽음을 맞았을까? 그는 쌀값을 제대로 받고 싶어 하던 농부 중의 농부였다. 우리 기도의 품이 한없이 넓어지고, 속절없이 깊어져야 하는 간곡한 이유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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