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
한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진부령은 추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고 뒷산에서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산에서 떨어진 잣 한 송이를 권사님이 가져다 주셨는데 큰 아이와 남편이 까놓았습니다. 남편이 잣 껍질을 깨면 큰 아이가 까서 그릇에 담았습니다. 한 알 한 알 집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마을의 산은 국유림이라 잣을 따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집 앞에 떨어진 잣을 줍는 것은 허락됩니다. 가을 옷을 입고도 “어이 추워”하며 작은 아이가 집 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곧 진부령의 기나긴 겨울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가마솥 솥뚜껑에 혹시 고기를 구워서 드셔 보셨나요? 지난주 타지 방문 중에 쓸모없어진 나무 상자를 뜯어 불을 붙이고 가마솥 솥뚜껑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남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니 맛도 맛이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가 더 즐거웠습니다. 그 솥뚜껑은 고물상을 하며 지역의 공부방을 운영하시던 목사님께서 “고물상이면 이런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고물상 선배님의 말씀을 따라 오랜 시간을 가지고 계시던 솥뚜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솥뚜껑은 목사님과 함께 먼 이사 길에 올랐고 지난 주 여러 사람들에게 뜨거운 불판이 되어 주었습니다. 솥뚜껑 하나에 여러 사람이 그렇게 기쁨을 누릴 수 있다니 솥뚜껑은 참 보람차겠다 싶었습니다.
시커멓고 무겁고 이제는 장식용이 아니고서는 어디 쓸모도 없는 솥뚜껑도 누가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쓰임이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버리지만 누군가는 삶의 훈장처럼 여기고 가져다가 씁니다. 심지어 가재도구를 모두 버리고 멀리 이사를 해야 할 때조차도 솥뚜껑 하나만은 꼭 가지고 가야한다며 모셔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솥뚜껑을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주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솥뚜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솥뚜껑 자랑을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들도 그 솥뚜껑이 소중하고 새롭게 보입니다. 심지어 자신도 솥뚜껑을 하나 구해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솥뚜껑을 소유한 이에게 그 솥뚜껑은 삶의 기쁨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가치도 솥뚜껑과 같다고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우리는 타인들과 별반 다를 것 없거나 별로 신통치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체는 솥뚜껑의 주인입니다. 주인이 솥뚜껑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솥뚜껑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일생을 너무 수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세상이 아무리 한 인간의 가치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절하해도 주인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회소식을 통해서, 혹은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인간이 쉽게 이용당하거나 버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면 낙심하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가치 없게 여기고 업신여긴다고 하여 한 인간이 가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별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가치 없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같이 애타게 찾으며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분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삶의 척도이며 날마다 다시금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입니다.
길가에 버려진 솥뚜껑도 주인의 사랑을 받으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먹음직한 고기를 구워내는 놀라운 일을 끝없이 감당합니다. 우리도 주인의 도우심과 사랑을 받으면 세상에서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삶을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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