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성경 밀수꾼
한글보급에 일등공신으로 성경 번역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소설가 이광수의 평가가 대표적이다. “아마 조선글과 조선말이 진정한 의미로 고상한 사상을 담은 그릇이 됨은 성경의 번역이 시초일 것이오. 만일 후일에 조선문학이 건설된다 하면 그 문학사의 제1항에는 신구약의 번역이 기록될 것이외다.” 한반도 복음화는 한글이라는 과학적인 말글에 큰 빚을 졌다.
성경 번역을 주도한 인물은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 목사(1842-1915)였다. 그는 1874년부터 청나라와조선의 국경지대인 만주의 고려문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했는데, 거기에서 조선인들을 만났다. 처음에 한문성경으로 전도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1876년, 조선의 의주 청년 이응찬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이듬해부터 신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착수한다. 여기에 매킨타이어 목사와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서상륜이 가세하였다.
1882년, 한글성경 번역작업은 드디어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란 첫 열매를 낳았다. 이어 요한복음을 번역하였고 마침내 1887년에는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번역한 <예수셩교젼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이 최초의 한글성경은 서간도에 살던 조선인을 전도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였다. 한글의 발전에서 보더라도 최초의 한글 소설 <무정>(1918년) 보다 무려 30년이 앞선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글성경을 한반도 내로 반입하는 길은 막혀 있었다. 로스 목사는 수차례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방법을 바꿔 1884년 봄에 6천권의 성경을 제물포항으로 보냈다. 그리고 백홍준과 이성하를 당시 해관(海關)의 책임자인 총세무사 묄렌도르프(1847-1901)에게 보내어 그를 설득하였다. 그는 목(穆)참판이라고 불리던 독일인이다.
묄렌도르프는 조선 개화기에 3년간 이 땅에 머물며 외교와 관세업무를 비롯해 여러 가지 근대적 제도를 심어준 장본인이다. 그는 중국에서 청국해관의 말단 세무사로 또 독일영사관 계약직 통역으로 일하던 중 졸지에 대한제국의 참판급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묄렌도르프는 그를 추천한 리홍장에게 다시 불려가기 까지 이 땅의 개화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관세청에는 초대 총세무사 묄렌도르프의 초상이 걸려있다.
조선의 해관을 지키던 묄렌도르프는 놀랍게도 최초의 밀수를 스스로 감행한 비화를 남겼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던 묄렌도르프가 자신의 직무를 거스른 밀수품은 바로 최초로 번역된 한글성경 6천권이었다. 제물포 세관창고에 압류된 성경 6천권은 세관장 관사로 불법적으로 옮겨졌고, 이렇게 반입된 성경은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묄렌도르프의 분별과 지혜가 당시 조선의 복음화에 밑거름이 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권서인(勸書人)들은 한글성경을 배포한 주역이 되었다. 그들은 마을마다 성경을 짊어지고 들어가 복음의 씨를 뿌렸으며 이들의 노력으로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인 1880년대에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여러 곳에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최초로 완성된 복음서를 보급한 권서인은 <예수셩교젼셔>의 식자공 김청송이었다.
1990년대 독일에서 사는 동안 종종 집으로 배달된 화물통지표를 들고 복흠 세관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배편으로 온 책 상자들을 찾으러 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세관의 느린 업무와 예외 없는 세금부과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곤 하였다. 세관원은 소포 상자를 뜯어 책을 한 권 한 권 살펴보았다. 낱장 낱장을 살펴 새 책과 헌책을 가려 놓고, 양쪽 모두의 값을 매기는 세관원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받으려고 이러는가?” 싶어 불안 해 하였다.
결국 세관원은 모든 책값에서 7퍼센트를 세금으로 매겼다. 교회용도는 물론 한글로 된 책조차 세금을 받으려는 세관원의 고지식함이 원망스러웠다. 세관 업무는 해마다 점점 강화되어 갔다. 그러던 중 한국의 초대 관세청 책임자가 독일인 묄렌도르프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독일 복흠세관에서 약간의 세금을 떼이는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 밀수에 적극 나선 묄렌도르프의 유연한 직무수행과 독일 복흠 세관 말단 세관원의 고지식함을 단순히 비교하는 일은 부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여, 국내로 반입하고, 마을마다 등짐을 지고 반포했던 130여 년 전의 열심과 비록 성경책은 다양하고 풍족할지 언정 ‘말씀’에 빈곤한 지금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 말 성경에 빛을 던져준 고마운 한글날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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