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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8 00:03
   
윤리적 태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8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44 [294]


윤리적 태도


“어떤 영화의 태도가 윤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 중의 하나는 그 영화가 (선이 아니라 오히려) 악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영화에 대한 그의 분석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윤리적 판타지를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선과 악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전제하고 그 둘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므로 선은 결코 악이 될 수 없으며 악 또한 결코 선이 될 수 없다는 식의 천진한 가정이야말로 윤리적 판타지라고 경고한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선의 기반이 사실상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일 것이다.” 분명함보다는 모호함을 직시하는 것, 확신보다는 회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윤리적으로 바른 태도는 아마도 이런 것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평론가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 이런 무시무시한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의 악은 자신이 한 번도 악이었던 적이 없다고 믿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


우리는 살아가는 삶 속에서, 특별히 신앙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선한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선악과의 저주는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번번이 비웃고 좌절시키고 만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마침내 선과 악을 알게는 됐지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지니지 못한 피조물의 비극은 도처에 여전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문제는 평론가의 지적처럼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선함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모호함과 회의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우리는 언제나 흑백의 분명한 선을 긋기를 즐겨한다. 나쁜 것과 좋은 것, 악한 것과 선한 것의 경계를 확연히 긋고 그 둘이 섞이지 않도록 한 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이것은 윤리적인 태도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저 정확한 평론가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윤리적 환상에 근거한 무책임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는, 기독교는 점점 더 명확한 선 긋기를 시도한다. 진보와 보수, NCCK와 한기총, 타종교와 기독교, 차별 받아 마땅한 소수와 마땅히 차별하는 다수. 그리고 쉽게 선을 긋는 사람들은 이 선 긋기 속에서 자신은 단 한 번도 악이었던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여기서 저 평론가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악은 자신이 한 번도 악이었던 적이 없다고 믿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 올바른 윤리적 태도는 과연 선의 기반이 매우 허약하다는 인식에서만 가능한 태도일 것이다. 선과 악은 물과 기름처럼 구별되어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굳이 비유하자면 오히려 물감 섞인 물과 같은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둘을 가를 수 있다는 확신보다는 그 둘의 모호함과 복잡함을, 선의 악과 악의 선 앞에서의 무력함을 상기하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태도를 위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윤리적 모호함을 견디는 일이야말로, 그래도 윤리적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롬 7:21)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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