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지난 두 주간의 아프리카 여행은 그야말로 야생동물을 질릴 정도로 많이 보는 여행이었다. 새삼스럽게 ‘야생동물’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동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동물에 대하여 남다른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야생동물’이란 단어를 깊이 음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생’이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 또는 그런 생물’을 말한다.
이런 의미로 보면 사람이 먹이를 주는 동물은 야생동물이 아니다. 이를 우리는 ‘가축’이라고 한다. 가축 혹은 애완동물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 혹은 인간의 필요를 따라 키우는 동물을 말한다.
가축은 인간의 욕구에 맞게 자라줘야 한다. 대부분은 인간의 육식을 위해 길러진다. 애완용은 좀 다르지만. 이를 조금 신랄하게 말하여 ‘사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육’에 반대되는 말이 ‘야생’이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우문이다. 동물을 그냥 야생으로 두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본래적이란 뜻이고 법칙에 맞는다는 말이다. 야생동물은 법칙에 맞는 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가축은 법칙에 어긋나는 동물이다.
자연의 이치, 본래의 생물의 존재이유로 보면 야생동물이 맞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야생은 인간이 원하지 않는 야성을 가지고 있어 마치 부자연스런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동물들의 비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애완용으로 키우다 장애가 생기거나 병 들면 길거리에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 생존하기가 어렵다. 자연에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프리카에는 ‘빅5’라는 동물들이 있다.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이 ‘빅5’를 반쯤 보면 잘 보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빅5’ 중에 표범만 못 봤다. 가장 위험한 다섯 가지 동물 혹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동물을 의미하며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가 바로 그것이다.
어스름에 달리던 차량 바로 앞에 누워있던 사자를 본 일은 지금도 그 감동이 살아있다. 나중에 오수를 즐기는 사자 세 마리를 멀리서 보긴 했지만 감동으로 치면 1-2m 거리에서 본 한 마리와는 견줄 수 없다.
차유리만을 경계로 이빨을 드러내고 차 옆으로 다가왔다 어슬렁거리고 숲으로 사라진 사자는 지금도 공포와 신기함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그 사자 때문에 ‘야생’이란 말을 더욱 곱씹게 되었다. 자유로운 사자의 삶의 공간에 인간이 문명의 상징인 차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부자유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어느 존재든 자신을 위해 태어났다.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모순은 인간만이 가졌다. 자존심 상하지만 야생의 자유가 참 부럽다. 악어가 누워 있는 곁으로 코끼리가 유유히 풀을 뜯는 게 야생이다. 인간도 야생동물의 공존을 배워야 한다.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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