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살기
기업총수의 가석방 소식을 접하거나 불법 대선자금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이 솜방망이 처분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면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법은 만인이 아니라 오직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법이 부자와 권력자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린 안타까운 사회를 풍자한 말이다.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사실 다름 아닌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같은 무시무시한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부자나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약자나 가난한자의 눈을 상하게 하면 자신의 눈으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사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또한 함무라비 법전은 최저임금을 제정하여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등 인류 최초의 약자 인권 보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약자를 위한 인권 보호법은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잘 나와 있다: “백성의 복지와 안녕을 촉진하고, 정의가 온 땅에 충만하여 악을 멸하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없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
모세오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창조 이야기나 출애굽 사건이 아니라 함무라비가 정의의 신 세메쉬에게 법을 수여 받은 것처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즉 법을 수여 받은 것이다. 모세가 받은 법은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이 더 이상 바로의 억압과 노예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모세오경은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계약 법전”(출애굽기 20-23)을 포함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구체적인 방향을 보여준 “성결 법전” (레위기 17-26)과 “신명기 법전”(신명기 12-26)도 포함하고 있다. 모세오경을 하나의 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다. 모세오경을 법전이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구절은 바로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이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레아”(רע)는 모세오경에서 “동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고(출애굽기 2:13; 11:2; 21:14; 22:7; 레위기 20:10), 때로는 “약자”나 “가난한 자”를 이웃으로 규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레위기 19:13, 16). “외국인” 혹은 “이방인”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겔”(גר)은 창세기에 2번, 민수기와 출애굽기에 각각 9번, 레위기에 18번, 신명기에 21번 나온다. 모세오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신명기는 가난한 외국인을 이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법)임을 분명히 있다(신명기 24:10-18).
신명기에는 추수기에 거두어들인 수확을 반드시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법이 있다. 추수하는 곡식을 가난한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누고 올리브 나무 열매와 포도를 가난한 외국인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나누는 법이다(신명기 24:19-22).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인 땅의 소산물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는 신앙고백이며,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인 것이다.
김진양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