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음식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 역시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하며 삶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명절에는 대식구의 삼시세끼를 준비하는 일과 돌아서면 쌓여있는 설거지가 가장 큰 테마입니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은 소고기국(서울식 육개장)과 삼겹살, 문어입니다.
언제나처럼 친정어머니는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식구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세 딸들이 차례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도왔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십니다. 친정 부모님과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도합 16명입니다. 이 식구가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거리가 개수대에 가득 찹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점심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세끼를 챙기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해마다 명절에 모이면 언니들과 제가 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막창을 먹으러 나가는 일이었습니다. 큰언니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생 막창을 먹는 행위는 그저 먹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세 자매가 살면서 남들에게는 말 하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친정아버지께서 집에서 숯불구이를 해서 먹자며 생 막창을 사다놓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비가 와서 숯불구이는 못하고 집에서 후라이펜에 노릇노릇 구워서 먹었습니다. 속닥거리는 세 자매의 대화 시간은 올해도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딸들이 머무는 동안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여서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던 친정어머니는 딸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 멸치와 다시마, 새우, 표고버섯을 갈아서 만든 육수용 가루와 돼지고기, 미리 주문해 놓은 의성마늘, 몸에 좋다는 약초, 담근지 10년이 된 간장 등을 세 자매에게 골고루 나누어 싸주셨습니다. 각자 자신의 차에 어머니의 사랑어린 음식들을 싣고서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에 사는 딸들은 출발했습니다.
세 시간 이상 달려 강원도에 들어섰을 때 즈음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향아, 혹시 차에 스티로폴 박스 두 개 다 실었나?”하고 물어보십니다. 저는 남편에게 우리 차에 스티로폴 박스가 두 개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응”하는 남편의 대답에 저는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스티로폴 박스는 다름 아닌 세 자매가 각자 하나씩 가지고 가야할 돼지고기였기 때문입니다. 짐을 싣던 남편이 스티로폴 박스를 하나 싣고 또 박스가 문 앞에 나오자 그것도 저희 것인 줄 알고 실었습니다.
고기가 없어진 작은 언니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어머니는 또 제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작은언니의 몫인 고기는 제가 다 먹기로 했습니다. 임신 중인 작은 언니를 위해서 전날 저녁 부모님과 큰언니가 특별히 까서 넣은 마늘도 부지런한 남편이 실어왔습니다. 마늘도 그냥 제가 먹기로 했습니다. 의도치 않게 올 추석의 음식들은 강원도에 가장 많이 실려서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마당에 앉아서 제 몫으로 받은 통마늘을 칼집을 넣어 쪼갰습니다. “이렇게 쪼개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겨울 나도록 먹어도 안 상한다.”라며 쪼개서 넣어두라고 아버지가 신신당부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김장철이 되면 마늘만 한 바구니를 까야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쪼갠 마을을 물을 부은 대야에 좀 불린 다음 텔레비전을 보면서 세자매가 함께 깠습니다. 허리가 아프고 손이 퉁퉁 불도록 마늘을 까고 나면 빻기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져온 돼지고기와 마늘은 교회 식구들의 주일애찬을 준비하고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들도 있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 가고 있지만 언제 만나도 멀어지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 하나님이 주신 지극한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오늘 하루도 용기를 내어 봅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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