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원전 그리고 지진
2016년 9월 12일 저녁. 연구소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다가 한 동안 카톡으로 자료를 주고받을 수 없어 서로 통신상의 문제거니 했습니다. 이상한 소리(진동)를 들었지만 그것이 지진으로 인한 것인지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9시 넘어 느즈막이 귀가하면서 지진소식을 접했습니다.
경주 남서쪽에서 규모 5.1과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고, 부산 울산 경주 등지에서 창문, 침대가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졌다는 소식입니다. 서울에서 회의하느라 생각에 골몰하던 중에도 느낄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규모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핵발전소(이하 원전)였습니다. ‘안전한 걸까?’
고 문헌을 보면 본래 그곳 경상도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었습니다. 경주와 울산은 특히 더 많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두 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초래하게 될 원전이 지금 가동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에서 30여km와 5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1기도 아니고, 경주 인근엔 월성 원전이 6기, 부산 인근엔 고리 원전이 6기나 됩니다. 게다가 고리 지역은 신고리 3·4호기가 건설 중(3호기는 시운전 중)이고, 신고리 5·6호기도 건설 승인이 난 상태입니다.
이번 지진을 접하면서, 무엇보다 분명해진 건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원전을 추가로 짓거나 그에 의존하는 에너지정책을 펴서는 안 됩니다. 원전이 있었기에 그동안 풍요와 편리를 맘껏 누려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나 이번 사고가 예고하듯 풍요와 편리는 계속될 수 없습니다. 미국 드리마일과 구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았듯 이미 원전의 안전신화는 깨진지 오래입니다. 원전 사고는 당대 최고의 원전 기술과 안전 시스템을 자랑하던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사항입니다.
두 번째는 철저한 안전의식과 안전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진이 일상이 된 나라가 아니라는 말로 위험을 감지하고 탈출하는 학생을 막아서는 등 우왕좌왕하게 한 걸 이해시킬 순 없습니다. 원전과 같은 위험요소를 없앨 수 없다면, 지금 당장 그 위험요인을 정확히 알리고 재앙에 따른 대처훈련을 실시해야 마땅합니다.
세 번째는 이번 지진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 이들이 느꼈을 두려움은 물론, 원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원전이 생산한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원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신음소리에 둔감합니다. 에너지탐욕에 눈멀고 귀먹어 있어서일 것입니다.
피조물들이 고통 가운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가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언젠가 하나님은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처럼 동산에 숨어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귀를 쫑긋 세워 들으려 애써 볼 일입니다.
듣기만 한다면, 지나친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는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기시고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새로이 인도하실 하나님을 뵐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생명이 내는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친히 치료를 시작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할 뿐 아니라 에너지를 낭비해온 삶을 회개하고 절제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에너지를 덜 쓰고, 좀 더 덥고 좀 더 춥게 지내는 일에 솔선할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성찰하며 원전 폐기를 논하고 에너지효율을 높이며 햇빛과 바람 등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유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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