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로 드려지는 올림픽
스포츠처럼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전 세계인들이 집중하는 드라마이다. 2주간의 일정 동안 선수들은 평생 준비한 역량을 한 번에 쏟아 붓는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인생 최절정기에, 최고의 역량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 체육인으로 살지만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은 한 번의 기회일 수 있다. 한 나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대표로 뽑히고, 한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한 번의 경기는 그 선수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인생의 모든 것을 모아 한 번의 경기에 쏟아 붓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지난 모든 과거이며,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까지 저당 잡힌 것이다.
선수가 메달을 따면 그의 과거가 조명된다. 어느 선수나 그렇지만 그의 땀과 눈물이 맺힌 지난 시절이 있다. 그래서 보면 모두가 인생의 드라마가 있다. 그것이 비록 몇 분의 드라마로 연결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야 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가족과 친구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운동에 전념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부상도 당하고, 육체의 모양을 넘어야 하기에 몸이 부서지는 경험도 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섰다면 거짓말이다. 그것은 메달을 딴 선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여했다는 것은 그가 그러한 이야기들을 뒤에 숨겨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 선생님은 곧잘 우리의 인생을 경기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달려갈 길을 가고 있다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 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경기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면 하나님이 결승점에서 의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전쟁과 같은, 경기와 같은 순간들을 자주 마주한다. 부상도 당하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처럼 내 영혼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도 맞이한다. 한 번의 경기를 이겨서 기쁨으로 춤을 추다가도 또 한 번의 패배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운동선수가 평생을 승리와 패배를 오가며 자신을 훈련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도 일희일비하며 이 경기를 마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생의 수고에 올림픽과 같이 절정의 한 경기가 나타난다. 수많은 노력과 수많은 전쟁과 경기를 치러 왔을지라도 한 번의 이 경기가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의 믿음에서도 그러한 순간은 온다. 남들은 경기를 즐기라고 하고, 부담 없이 임하라고 하여도 이 경기의 중요성을 알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올림픽이듯 우리의 인생에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승리자가 되길 원한다. 잘 준비되어서 내 인생의 최고를, 내 인생의 최절정을 주님을 위해서 쓰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내 믿음을 증거하고, 내 삶의 수고를 증거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후회 없이 드려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바울 선생님은 바로 이 순간을 자신의 삶의 끝에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 4:6)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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