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nner Takes It All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중음악 세계를 지배했던 아바(ABBA), 세계적 인기도 인기지만 특히나 한국인들은 아바를 유별히 사랑했다. 어디서나 아바의 노래가 울려퍼졌던 아련했던 7080이랄까. 2000년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는 그 시절까지도 독일인들에게 절대적이었던 아바의 인기에 그저 놀랐던 일도 있었다. 히트곡들을 모아 하나의 뮤지컬을 구성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노래를 선사했던 아바, 그들의 노래 중 “The Winner Takes It All”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설의 후렴구는 이것이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죠. 패자는 승리 옆에 초라하게 서있을 뿐...” The Winner Takes It All, 한마디로 하자면 승자독식(勝者獨食)이다.
지금은 올림픽의 계절, 브라질 국내의 복잡한 문제를 강제로 덮어두고 강행된 리우올림픽은 시작부터 탈도 많았다. 올림픽 반대 시위자들은 성화 봉송까지 방해하기도 했다. 나라가 이 꼴인데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올림픽이 말이 되는가, 말하자면 이런 내용의 이유 있는 반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올림픽은 열렸고, 전 세계인의 이목은 이 만국체육대회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은 ‘10-10’의 목표로 올림픽에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10-10은 최소 10개의 금메달과 전 세계 10위권 내 진입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목표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1등이 되고자 하고, 1등만 기억되는 나라이고 보면 당연한 목표인 셈이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의 정신으로 충만한 나라에 어울리는 목표가 아닌가.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경기는 인간 한계의 도전을 감행하는 선수들로 인해 때때로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대개 금메달의 승자가 아니라 은이나 동, 또는 메달권에 들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더 자주 나타나곤 했다. 며칠 전 한 중국 여성 수영선수가 보여준 유쾌한 감동도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결승에 진출하게 된 푸위안후이는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뒤늦게 알고는 정말 깜짝 놀라며 “내가 그렇게 빨랐냐”고 활짝 웃으며 반문했다. 그리고는 자기는 태고의 힘을 다했다고, 지금으로 정말 만족한다고 시종일관 유쾌하게 말했다. 심지어 기자가 그럼 내일 결승에서도 희망이 있겠다는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없어요! 전 이미 엄청 만족했어요.”라고 대답했다. 희망이 없다던 이 유쾌한 선수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음 날 결승에서 동메달을 땄다. 은메달과의 차이는 불과 0.01초, 기자가 아쉽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내 손이 너무 짧았나 보다며 웃었다. 그녀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승부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태도, 승자독식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한 인간의 영혼, 사람들은 가장 치열한 승부의 세계,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장면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으뜸인가, 이 승자독식의 놀음은 세상뿐 아니라 이미 교회도 좀먹고 말았다. 교회는 서로를 비교하며 으스대고, 교회 안에서는 너도나도 승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침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막 10:43-44) ‘승자독식’이란 단어는 원래 신앙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었다. 한 공산주의 국가의 여성 스포츠맨이 다시금 우리의 마땅한 고민을 일깨워준다. 교회는 과연 주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진경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