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마음
아침 출근길 운전 중에 휴가를 와서 계곡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가족들, 미시령을 넘으며 잠시 차에서 내려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봉포 앞바다에서 이른 아침의 바다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이들과 여유를 누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소비를 추구하지 말고 더 많은 행복을 선택하라는 지난 밤 풍경소리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고성에 이사를 와서 만난 새로운 모임이 있습니다. 2개월에 한 번씩 있는 작은 교회 연합예배가 바로 그것입니다. 거리로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4개의 작은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선교후원을 위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에서 드려진 헌금은 해외에서 선교를 하고 계신 한 선교사님을 후원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지만 작은 교회들의 목회자가 바뀔 때도 맥이 끊어지지 않고 11년여를 지속된 예배모임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몇 차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다른 목사님들을 통해 선교사님에 대한 소개도 듣고 모 방송사에서 촬영한 선교지 영상도 보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난 주일에 한국에 들리게 되신 선교사님 가족이 연합예배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고성에 들리신 것은 7년만이라고 하니 이사 온지 1년 만에 선교사님과 대면하게 된 저희 가족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4개 교회가 모두 모여도 한 교회의 아담한 예배당을 채울만한 인원이었지만 여러 해 동안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삶의 일부를 떼어 드리며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던 시골교회 교인들 역시 반가움과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님도 작은 시골 교회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후원하는 이 모임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며 반가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20년을 한 나라에서 선교하면서 세 자녀가 모두 선교지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제는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진학을 위해 한국에 잠시 온 가족이 들어오셨다고 했습니다. 2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을 변할 시간입니다. 이제는 도리어 한국의 문화가 어색하고 한국 교회의 모습 역시 선교사님 자신의 파송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는 말씀 속에서 오랜 선교자로서의 삶 속에서 이방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예배의 사회를 본 지역 목사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먼 선교지에서 선교를 하고 계신 선교사님을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십시오.”라고 소개한 것을 두고 선교사님은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해 주시는 분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의 마음의 자세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한국에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이들에 대한 빚진 마음이 있으셨는데 도리어 시골교회 교인들이 빚진 마음으로 소개하고 인사하니 서로가 감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문화를 익히고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고단하셨을까요? 행여나 해외에서 선교한다며 제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고심하며 힘든 때도 있었을 것이고, 후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다른 도리 없이 선교를 접고 귀국해야 하는 현실의 벽을 느낄 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말 못할 고민도 없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선교사님 개인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한국의 교회도 믿음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20년 선교사역입니다.
제가 청소년기 시절에 혼자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창밖에 비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멋지다. 하지만 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서 힘겹게 살아가겠지?’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기 시작하면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휴가를 온 이들에게 속초와 고성은 아름답지만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곳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일터인 것처럼 말입니다.
먼 이국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고난도 달게 받으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어느 곳이 되었든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모이고 모여 역사가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이고 더 나은 삶이라 믿고 오늘 하루도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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