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
1:29:300.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의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 처음 소개된 이 법칙을 사람들은 저자의 이름 따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한 보험회사의 손실통제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던 하인리히는 그 업무상 다양한 사고통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고를 경험하면서 하인리히는 사고에 관한 한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1:29:300의 법칙이다. 하인리히가 수많은 사로로부터 발견해낸 내용은 이렇다. 산업재해로 1명의 사망자가 나오게 되었을 때, 이미 같은 원인으로 29명이 경상을 입었으며, 똑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람들, 즉 잠재적 부상자는 300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법칙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의 대형사고가 일어나기까지는 무수한 작은 징조들이 먼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따라서 처음에 일어나는 사소한 징조들을 무시하거나 대처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필시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한국기독교의 대형 성추문 사건이 터졌다. 한국 교계의 대표적 청소년단체의 지도자 목사가 자신을 따르는 청소년을 상대로 지속적인 성폭력을 자행해왔던 것이 폭로된 것이다. 성폭력에 관한 한 유명 목사의 성폭력은 ‘이번엔 누구?’라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심지어는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의 교수까지 그 이름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당사자들은 기혼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배우자를 향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의 평생 맹세를 깨고 자신의 힘을 이용해 다른 여성의 성을 강탈한 사람들이니 감히 다른 성도를 이끄는 지위는 박탈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자신의 죄에 책임을 지고 평범한 신자로 남은 삶을 회개로 채우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 목사직이 박탈된 사람을 거의 알지 못 한다. 대형 참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건의.
하인리히 법칙을 적용해보자면 교회 내의 대형 성폭력 1건마다 작은 수준의 성폭력은 교회 내에서 이미 29건이 발생된 것이고, 성폭력의 사소한 징후들은 무려 300건이나 일어났다는 사실이 된다. 그런데 대형 성폭력 사건이 하나가 아니니 전체 한국교회의 성폭력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인리히 법칙은 단지 대형 사고에 대한 설명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사고 예방을 위한 지침도 준다. 이미 일어난 엄청난 일이 무수한 징후와 경미한 사고들 후에 일어난 것이라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징후들을 감지해내고 이를 철저하게 관리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커다란 참사를 미리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앞으로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 교회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성폭력의 징후들을 발견하고 이것들을 제거하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폭력의 문제는 비단 교역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만 않았을 뿐 교회 내의 성폭력 문제와 성윤리의 해이함 역시 사회의 그것보다 결코 낫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단호한 심판 역시 필요하다. 교회와 교단의 지도자들이 일벌백계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희망은 더더욱 요원하다. 한 인간의 죄과에 대한 심판은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심판은 한 명의 죄인을 진정한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정말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오히려 값싼 용서일 것이다. 이제 밖을 향한 부산한 시선을 좀 더 안으로 돌리자. 지금은 밖을 정죄하기보다 안을 추슬러야 할 때다.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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