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
지난밤에도 안녕히 잘 주무셨습니까? 아이들 방학이기도 하고 저도 휴가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큰언니네로 다니러 왔습니다. 와서 보니 수도권이 얼마나 더운지 밤에 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진부령도 시원하기만 하다가 지난주 중복을 전후해서 낮 기온이 29도로 훌쩍 뛰었습니다.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은 밤이면 추우셔서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을 덮고 주무신다고 하십니다. 낮은 덥지만 밤은 산바람이 내려오고 구름이 지나다니며 찬 기운을 놓고 가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속회예배를 드리고 다과를 나누다보면 여름이어서 수박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밤에 주무시다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싫으시다며 수박 드시는 것을 꺼려하십니다. 가뜩이나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데 몇 번씩 소변이 마려우셔서 깨다보면 잠을 제대로 주무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피망 하우스에서 종일 땀을 흘리며 일하시려면 체력이 중요한데 그 체력을 담보하는 것이 바로 잠입니다.
저도 이제는 별 이유 없이도 하룻밤에 한두 번씩 잠을 깹니다. 자다가 누가 업어 가도 모른다고 하던 어린 시절의 잠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고민이 많아서 밤잠을 설친다는 것은 어른들만의 이야기였고 소변이 마려우면 그냥 이불 위에 지도를 그리고 아침이 되어 다 마르도록 모르고 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도 새벽 4시 반만 되면 해가 떠서 눈이 떠지고, 남편이 늦게 잠자리에 들려고 방으로 들어오면 잠이 깨고, 아이들이 잠꼬대를 하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속회 예배 때 수박을 마음껏 먹지 않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신체적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잠에 예민해 지고서야 깨닫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그들과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들은 실로 ‘꿀잠’을 잡니다. 안아서 옮겨가도 모르고 밖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잠을 자며, 아침이 되어서 알람이 울려도 듣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잠을 자는 능력도 하나님이 어린아이들에게 주시는 축복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고민에 휩싸여 잠들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천만금을 주고라도 마음 편안한 단잠을 사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으로 형을 만날 것을 두려워하며 얍복 강가에서 죽을지 살지 몰라 기도하던 야곱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죄를 짓고 부유해 질 수는 있어도 단잠을 잘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혜로운 야곱은 형에게는 최선을 다해 사죄하고 하나님께는 죽기 살기로 매달려 환도뼈가 부러지고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끝까지 하나님을 찾아 매달리는 믿음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무더위로 인해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며 우리가 일평생 날마다 거르지 않고 죽음과 재생을 경험하는 ‘잠’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난밤 밤을 꼬박 지새울만한 고민 없이 그저 무더위에 뒤척이며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혹여 이 칼럼을 읽으시는 분 중에 심한 마음의 고민으로 애간장이 타는 밤을 보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야곱의 하나님이 계시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이셨으며, 에서를 두려워하던 야곱의 그 두려움도 찬양과 감사로 바꾸셨습니다.
잠 못 이루는 번민에 휩싸일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다시 단잠을 회복할 수 있는 평안을 주신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밤에도 우리 모두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몸은 더울지라도 마음만은 시원하게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단잠을 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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